<171005> Самарканд -> Бухоро, 최악의 하루
새 아침이 밝았다. 드디어 부하라로 이동하는 날이다. 어제 꽤 많이 걸어서 그런가 오늘따라 춥다. 썩 배가 고프진 않았으나 이동하려며 힘이 필요하니 아침을 꾸역꾸역 밀어넣었다.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는데 좀 으슬으슬하다. 여기 날씨가 이렇게 추웠나?플래그1[각주:1]
짐 정리하면서 남은 현금을 확인하니 부하라에서 다니기에 살짝 부족해보였다. 마침 숙소 근처에 중앙은행이 있다고 하여 바꾸러 갔다. 근데 중앙은행이 안보인다!? 더이상 시간을 허비하기 싫어 결국 그 옆에 있는 시중 은행에서 환전했다.플래그2[각주:2] 이번엔 1만숨짜리로 환전해줬는데, 뭉터기로 주는 건 변함없었다. 1달러에 8000숨인데 뭐 어쩌나(....). 한웅큼 쥐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체크아웃 시간이 다가왔고, 호텔 프런트에 택시를 한 대 잡아달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가 도착했고, 짐을 실어 사마르칸트 역으로 출발했다. 10분 정도 걸렸는데, 몸에 한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나 혼자만 춥나...?
사마르칸트에서 부하라까지 열차로 이동했다.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기에 일반 열차편을 예매했었다. 소요시간은 약 2시간 가량. 근데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사실 택시를 타는 동안에도, 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주변 풍경은 안중에도 없었다. 슬슬 온 몸이 뻐근해졌다..
그렇게 버티다 열차에 올랐다. 내가 앉은 자리 앞에 배낭이나 캐리어를 두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 배낭을 얹었다. 그리고 내부를 둘러봤는데, 지난번에 탔던 고속열차에 비해 다분히 서민적(?)이었다. 사람들은 객실 내의 TV, 그 속의 국내 드라마를 보며 지루한 시간을 달래고 있었다. 드라마가 영 진부했던지, 어린 친구들은 지루함을 못 이기고 칭얼댔다. 그 와중에 열차 내부 풍경과 바깥 풍경을 조금이나마 담아봤다.
객실 내부풍경. 확실히 아프로시얍이랑 다르네. 그리고 왼쪽에 제일 위에 있는 백팩이 내 배낭.
창 밖 풍경.
열차로 이동하는 동안 쉬면 좀 괜찮아질까 했지만, 헛된 기대였다. 되려 부하라에 가까워질수록 한기가 더해졌다. 검은 항공점퍼를 입어도 똑같았다. 그 와중에 실제로는 날이 좀 더웠던건지 온 몸에 땀이 났다. 근데 그 땀이 그 땀이 아닌 거 같은데..? 더욱 날카로운 느낌이 내 몸을 파고들었다. 아, 이거, 식은땀이구나...
여기까지 온 이상 인정해야했다. 나, 훅 갔구나... 어제 self-혹사 당했구나... 망했다. 보자, 일단은 몸살같은데. 그나마 다행인 건, 혹시 몸이 아플까 싶어 구급약을 가져갔었다. 이걸 진짜 먹게
생겼네...
그러는 사이에 열차는 부하라역에 도착했다. 사마르칸트에서 숙소로 갈 땐 밤이었으니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지만, 오늘만큼은 반드시 버스타고 가겠다는 일념으로 택시기사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버스정류장에 갔다. 일단 숙소가 라비하우즈 근처에 있으니 기사 아저씨들한테 라비하우즈를 외쳤다. 마침 그 중에 한 사람이 뭐라뭐라 했는데, 대충 어디쯤에서 갈아타라는 말 같았다. 일단 이 버스를 타라길래 탔다.
버스 풍경. 우리나라 마을버스 느낌이었다.
그러다 번화가 근처에 갔는데, 앞자리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께서 여기서 내리라고 하시더라. 넘버 나인! 이라 외치시며(...). 땡큐! 땡큐! 를 외치며 버스에서 내렸다. 정말 숙소에 도착한다는 일념으로 버텨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9번 버스가 도착했고, 버스는 라비 하우즈 앞에 섰다. 숙소까지는 라비하우즈에서 도보로 5분 거리.
원래 계획이었으면 도착하자마자 숙소 주변의 건물들을 둘러봤을테지만, 지금 몸상태로는 어림도 없다. 두말할 것 없이 오늘 일정 취소. 일단 회복이 먼저니까.
숙소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려는데, 주인 아저씨께서 영어를 전혀 못하신다. 그 옆에 있던 프런트 여직원이 올 때까지 몇 분 기다렸다가 겨우 체크인을 완료했다. 거주지등록증도 신청하고.. 부하라 전통 건물 느낌의 호텔이었는데, 지금 그런거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일단 방에 들어가서 눕고 싶었다.
방은 건물의 가장 구석에 있었는데, 들어가자마자 화장실에 갔다. 역시 정상이 아니었다(...). 그러고선 짐을 풀고 구급약 파우치를 꺼냈다. 뭐가 문젠지 몰라 일단 감기몸살약을 먹었다. 그리고 또 화장실(.....). 아놔, 여행와서 이게 뭔 꼴이람. 꾸역꾸역 남은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은 후, 침대에 몸을 뉘었다.
헤롱헤롱..
그렇게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맘같아선 푹 자고 싶었지만, 몸이 날 화장실로 안내했다(....). 그렇게 계속 누워있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어졌다. 원래의 나라면 허기에 빠져 뭐라도 먹었어야겠지만, 이 시간이 되도록 식욕이 없었다. 오늘 하룻동안 먹은 거라곤 사마르칸트에서 먹은 호텔 조식이 전부. 오히려 화장실에 가고픈 생각 뿐... 제대로 몸살났네 XX.
호텔방에 TV 없이 오로지 침대만 있었기에 그저 누워있었다. 이건 정말 최악이었다. 여행와서 이게 뭔 짓거리야? 이러려고 여행 온 거 아니잖아! XXXXXXXXX... 끊임없이 나 자신을 힐난했다. 그러다 화장실(....), 다녀오면 힐난, 화장실, 힐난, 화장실...젠장.
지금껏 여행 다니면서 아무리 잠 줄이며 다녀도 아프지 않았는데, 하필 이역만리에서 이 사단이 났다. 계속 누워있으면서 내 몸상태를 체크했다. 처음엔 감기몸살에 걸린 줄 알았는데, 약을 먹어도 속이 계속 부글거리고 화장실에 자주 가는 게 뭔가 이상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더니, 장염에 걸려도 근육통과 몸살기운이 올 수 있다고 한다(...). 아, 어제 꾸역꾸역 먹었던 치킨이 잘못됐구나.... 결국 구급약 파우치에서 지사제 한 알 삼키고 다시 누웠다. 속은 여전히 부글거렸지만 아까보단 신호가 조금이나마 잦아들었다... 정말 조금...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지만 남은 이틀간의 일정을 위해서라도 회복해야 했다. 이대로 여행을 망칠 수 없었다. 억지로라도 잠을 청했다.
그렇게 내 여행라이프 사상 최악의 하루가 끝났다. 하지만 더없이 중요한 경험이었다. 그 댓가가 다소 혹독했지만. 특히 해외에서 음식도 다 안맞을텐데 국내여행처럼 몸 막 굴렸다간 골로 간다는 걸 체득했다. 앞으로의 내가 다닐 여행에 있어 이 날의 이 느낌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사마르칸트 여행기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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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03 | |
레기스탄 광장 (Registon Ansambli) - 마드라사, 그리고.. | |
1003+1004 | |
시압 바자르 (Siab Bazzar, Сиабский Базар) | |
171003 | 비비하눔 (Bibikhonum, Бибиханум) + α |
샤히 진다 (Shah-i-zinda ,Шоҳи Зинда, Шахи-Зинда) | |
사마르칸트 첫째날 마무리. | |
171004 |
사마르칸트 일상 풍경. |
171005 | Самарканд -> Бухоро, 최악의 하루 |
부하라 여행기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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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05 | Самарканд -> Бухоро, 최악의 하루 |
171006 | |
낙쉬반드 영묘 (Baha-ud-din Naqshband Bokhari Memorial Complex) | |
시토라이 모히 호사 (에미르 여름궁전) (Sitorai Mohi Xosa, Ситораи Мохи Хоса) | |
171007 | 부하라 둘째날 아침. |
칼론 건물군 (Poi Kalon, Мечеть Калон) - 모스크, 미나렛, 미르 아랍 마드라사 | |
부하라 요새 (아르크, Ark, Арк) | |
성벽과 그 주변 풍경. | |
171008 | |
(원 발행일 : 190721 / 순서 변경 : 20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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