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의 지름 이야기. (18) - LG 32WD89-W 모니터 (a.k.a 와식 생활의 시작)
1.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디즈니랜드 만화를 챙겨보던 꼬꼬마 노말원군. 하지만 컴퓨터라는 신문물을 접한 뒤론 티비보단 컴퓨터로 게임을 하기 바빴다. 혹 티비를 봐도 녹색 풀때기가 가득한 화면 외엔 도통 흥미를 못 느꼈다. 설상가상으로 케이블 방송에는 1도 관심이 없으셨던 부모님께선 TV 따위에 아파트 관리비 이상의 비용을 한 푼도 낼 마음이 없으셨다.
이로 인해 노말원 군은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집에서 'Mnet과 OCN'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가끔 명절에 친척집에 갈 때마다 요상한 채널들에 눈이 휙휙 돌아가는 게 전부였다), 남들이 모두 봤다던 혈혈단신으로 상경한 이후로도 딱히 TV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어차피 컴퓨터로 게임하거나 인터넷하는 게 더 재밌었으니까. 하물며 유튭이나 아프리카, 네이버로도 웬만한 영상들은 다 챙겨볼 수 있으니 더더욱 필요없었지.
그랬던 나도 단 하나 아쉬웠던 건 바로 스포츠 생중계. 비록 요즘엔 인터넷으로도 TV 못지않게 라이브를 볼 수 있다지만, 그럼에도 노트북, 스마트폰 액정 혹은 보급형 PC모니터의 조그만 화면이 아닌 고화질의 넓직한 화면으로 보고싶었다. 뿐만 아니라, 맘편히 누워서, 두 손 자유로이(?) 한 치의 쭈그러짐 없이 시청하고 싶었다. 게다가 유튭으로 각종 예능이나 드라마의 클립들을 보다보니 본방 욕심이 조금씩 자라났다.
2.
10년 전 15인치 노트북을 처음 손에 넣은 노말원군. 도서관 열람실에서 인터넷 강의를 듣고 싶어 보조용 컴퓨터로 샀지만, 이내 모든 작업을 노트북으로만 하기 시작했고, 당시 쓰던 데스크탑이 2년만에 사망(...)하자마자 폐기하면서 완전히 노트북으로 넘어왔다. 당시만 해도 여행다니며 똑딱이로 사진찍던 게 전부라 딱히 화면에 관심도, 지식도 없었고[각주:1] 그저 책상 공간을 잡아먹는 짐일 뿐이었다. 당연히 데스크탑과 함께 방출되었고, 그게 내 마지막 모니터였다.
그러다 1~2년이 지나 DSLR을 들이고 포토샵을 보정하며 블로그까지 활발하게 열어젖히며 본격적인 사진 생활을 시작한 노말원군. 조금씩 색 영역 따위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고, 이내 노트북의 구린 색감이 불편해졌다. 보정이 끝날 때마다 결과물을 확인하기 위해 아이폰으로 파일을 옮기기 일쑤였다. 근데 태생이 저성능 저렴이였는데 말년에 포토샵 따위를 시키니 영락없는 노인학대 아니겠는가? 결국 뜨겁게 비명지르며 각혈(?)하기 일쑤였고, 결국 서피스 프로를 영입하며 작년까지 쾌적한 사진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조금 더 큰 화면에서 결과물을 보고픈 마음은 여전했다. 언젠가 박람회에서 벤큐 전문가용 모니터를 처음 접했는데, 화면만 보는데도 정말 혹하더라.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업무용으로 지급받은 24인치 보급형 모니터를 사용하며 왜 사람들이 '넓은 화면'을 선호하는지 체득했다. 물론 책상 활용도가 급격히 감소하며(직전에 사용하던 방에선 책상을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모니터가 괜히 짐만 될 게 뻔해서 더이상 욕심내진 않았지만,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 '제대로 된 모니터'라는 불씨가 실낱같이 남아있었다.
자, 과거 회상은 이 쯤에서 그치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자.
3.
일전에 글썼다시피, 작년 한 해 가장 중요한 개인사는 '이사'였다. 이번 이사의 가장 큰 목적은 방을 한 칸 늘려 공간을 분리하는 것. 수면을 위한 침실과 공부나 다른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다르게 두고 싶었다. 여기에 자질구레한 짐을 몰아넣을 수 있는 창고 공간까지.. 세부적인 이야기야 위 링크에서 이야기한 부분이니 간단히 말하자면, 적어도 1.5룸을 구하여 침실과 거실을 분리하는 덴 성공했다.
여차저차 이사가 끝났다. 거실 겸 책방? 공간은 당일에 모든 배치+정리가 끝났는데, 침실은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옷장이랑 매트리스만 덩그러니 있는 수준이었다. 왜냐면... 애초에 방을 나눌 때부터 이 공간에 TV를 들일 계획이었으니까. 나름 방도 넓혔는데 방에 TV 한 대 들이고 싶었다. 때마침 새로 옮긴 방에 랜케이블과 TV케이블을 꽂을 포트가 딱 매트리스 발 쪽에 있었고... 지금이 딱 적기네!
이전 지름글에서 말했다시피 TV 거치 선반도 조립, 비치했으니 본격적으로 TV를 알아봐야 할 차례. 본래는 넷플릭스나 유튭 시청이 가능한 스마트 TV를 생각했다. TV 서비스야 새로 가입하면 되고, 랜선도 공유기에 같이 연결해서 OTT 보면 되니까. 근데, 이왕 살거면 노트북이랑 연결해서 모니터로도 쓸 수 있는 걸 사는 게 낫지 않을까? TV를 모니터처럼 쓰긴 힘들어도[각주:2] 모니터를 TV로 쓰는 건 내장 스피커가 있는 모델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어차피 작은 방에서 50인치 넘어가는 TV를 둘 것도 아니고 30인치 정도만 돼도 충분할텐데... 그래, 모니터로 가자!
4.
이제부터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모니터 크기부터 브랜드, 기능, 가격까지... 고민해야 할 요소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용도가 "TV+사진 확인 및 추가작업"으로 명확했기에 조금 더 선명한 선택지를 만들 수 있었다. 먼저 사진작업을 위해 IPS패널에 색 재현율과 색 영역, 시야각이 넓은 제품이 필요했다. 그리고 TV를 위해 내장 스피커가 있으며 TV 신호를 수신할 수 있는 제품이 필요했다. 여기에 4K의 높은 해상도는 덤. 대신 게임은 하지 않아서 응답속도나 주사율은 신경쓰지 않았다.
다음으로 가격. 일단 가격은 60만원 내외로 찾았다. 마음같아선 정말 좋은 모니터를 사고싶지만 모니터 하나에 200만원씩 쓰기는 여러모로 부담스러워서 (60만원도 비싸지만)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했다. 딴 것도 살 게 많은데 모니터에만 돈을 몰아쓰기엔 여러모로 부담스러웠다. 심지어 패드 할부도 아직 진행중이었고...
마지막으로 브랜드. 애초에 생각했던 건 DELL이나 BenQ사. 막연히 사진가용 모니터라고 하면 저 두 브랜드가 떠올랐다[각주:3]. 하지만 막상 각 잡고 찾아보니 쉽지 않았다. DELL사의 제품은 27인치 모니터가 타사의 32인치 모니터 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비쌌고, BenQ사 제품은 가성비는 좋지만 A/S가 괴담(....) 수준이었다(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서 찾은 대안이 LG. UN650 등의 여러 제품이 있었으나, 사진보단 영상 쪽에 조금 더 특화된 제품이 많아 선택이 쉽지 않았다.
결국 DELL, BenQ, LG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며칠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5.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LG와 벤큐 사이에서 갈팡질팡중이었다. 우연히, 정말 우연히 LG 32UD89라는 제품을 발견했다. 원래 해외에서만 판매하는 제품이었다가 재작년에 국내에서도 판매를 시작한 제품이라 그런지 페이지가 별로 없었고, 그래서 지금껏 못봤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껏 봤던 LG모니터 중에서 내가 찾던 조건에 가장 적합한 제품이었다. 무엇보다 전문가용이 아님에도 색 영역이 정말 넓은 편이었고, 내장 스피커가 있어 TV를 볼 수도 있는 제품이었다. 심지어 컴퓨존에 재고가 있어(개인적으로 믿고 사는 곳이다.) 바로 배송도 가능했고.
비록 원래 생각했던 예산보다 10만원 가량 비쌌지만, 지금 상황에선 이 제품이 가장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어 구매를 결심했다. 왠지 택배로는 불안한 느낌이 들어 퀵서비스 배송을 신청했고, 저녁시간대 배송이 가능하여 수령시간을 저녁시간대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그날 밤, 미리 정했던 시간에 물건이 도착했다. 박스에서부터 LG로고가 떡하니 박혀있는데 설레더라...! 부푼 마음으로 박스를 뜯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언박싱!
모든 구성품을 꺼낸 후, 박스에 적혀진대로 모니터를 설치하고 미리 비치해둔 선반에 올렸다. 다리가 선반 밖으로 살짝 튀어나왔지만 모니터를 안정적으로 두는 덴 문제없었다. 그렇게 내 방에도 드디어 TV이자 그럴듯한 모니터가 생겼다! 그간 어렴풋이 생각만 하던 걸 실제로 구축하니 느낌이 남달랐다. 없어도 생활하는 데 큰 문제는 없지만, 뭔가 내 인생 스테이지(?)가 한 단계 올라간 느낌이랄까..
6.
모니터 세팅이 끝난 후, TV 셋탑박스와 모니터 연결선 등을 추가로 세팅했다. TV 등 추가 세팅 이야기는 또 이야기할 게 산더미니(그래서 언제 할거니...?🥲) 다음 글에 이어서 하기로 하고, 지금까지 3달 가까이 사용한 느낌을 간단히 정리해보겠다.
1) 32인치 사길 잘했다. 이래서 넓은 화면을 쓰나보다 했다. 물론 TV 기준으로 아주 크다고 할 순 없겠지만, 내 방에서 누워서 보기에 딱 이 정도면 적당해서 더없이 만족스럽다.
2) 모니터 화질도 만족스럽다. 취미생활용으로 이 정도면 모자람없다. 해상도도 해상도거니와 화각도 넓고... 다만, 내 기준에 방에서 보기에 화면이 다소 밝은 편이라 평소에 최대한 어둡게 세팅해서 사용 중.
3) 상대적으로 연결 포트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HDMI 둘에 DP 하나. 아, USB-C 포트가 있는 건 좋은데, 영상 연결은 안된다. 처음에 이걸 착각하여 아이패드 영상이 안뜬다며 당황했다가 허탈해했던... 서피스 쓰시는 분들 기준으로 mini DP 포트도 없고, USB 3.0 포트도 없고. 이 점 감안하시길..
4) 하지만 일반 TV 셋톱박스를 연결하는 용도로는 비추. 물론 TV 셋톱박스 연결도 되고 내장 스피커도 잘 작동하지만(음질은... 모니터에 스피커 달린 걸로 만족하자.), 리모컨 수신이 안된다. 이게 왜 문제냐면, TV 리모컨으로는 화면 전환(입력단자 간 전환)과 볼륨 조절이 안된다! 그러려면 다시 모니터 앞으로 가서 수동으로 조작해야한다(...). 책상 의자에 앉아서 TV를 본다면 몰라도(손으로 조절할 수 있으니까.) 나처럼 거리가 떨어져있는 상황이라면 최소한 리모컨으로 음량을 조절할 수 있는 모니터를 사자.
5) 소리 음질..? 그냥 모니터에서 소리가 나는 수준. 물론 막귀인 내가 듣기에 특별히 거슬리는 건 없었지만, 음질에 민감하신 분이라면 별도로 음향장치를 구비했겠지. 다만, 위에서 말한 조작 문제가 정말 귀찮다.
7.
분명 모니터를 샀을때만 해도 금방 포스팅할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3달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게 다 내 게으름 탓이다(...). 그래도 지금이나마 마무할 수 있게 되어 기쁘네. 다음 이야기를 언제 이어서 할 지 모르겠지만, 기대해주시라! 지금까지 세팅 후 찍은 몇 장의 사진을 올리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이 쪽으로 잘 아시는 분이라면 아래 사진만 봐도 어떤 걸 세팅했는지 알아차리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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