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임정섭 - 글쓰기 훈련소 이야기.
1.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2013년 봄. 아직 본격인 취업시장에 뛰어들기 전 취업 준비를 위해 이런저런 취업 교재(?)를 미리 보던 중이었다. 그 중 어느 책에서 취업준비생에게 추천하는 도서 목록이 있었다. 심리학, 경제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있었다. 그 목록의 첫 페이지에 '글쓰기 훈련소'가 있었다.
2.
그전부터 막연히 글쓰기를 잘하고 싶었다. 특히 공부하던 게 끝나고 시간 여유가 생기면서 틈날 때마다 혼자 일기를 쓰곤 했다. 그런데, 내가 내 일기를 다시 읽어보는데 글이 가면 갈수록 쓰기 위해 쓰는 글로 보였다.
문단이 넘어갈수록 길어지고 글의 방향이 왔다갔다하며 읽는 사람이 보기 불편한... 게다가, 머지않아 자소서도 써야되는데 이대로는 불안했다. 그래서 막연히 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집어들었다.
본래 글쓰기 자체를 원론적인 학문적 행위라 봐서 고차원적 행위로 분류하고 있었다. 그래서 글 잘 쓰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이고. 근데 이 책의 표지에서부터 "간단하고 쉽게 글 잘 쓰는 전략"이란다. 제목부터 기존의 고정관념을 깼다. 그리고 그에 충실한 책이었다. "책 많이 읽을수록 글 잘 쓴다"는 고전적인 이야기[각주:1]가 아니라 "쓰기"를 위한 기술적인 책이었다. 비단 전문가 뿐만 아니라 누구든 글을 쓰도록 끌어들이는 책이었다. 특히 키위드가 머리에 남았고, 쉽고 간결하게 쓰여져있어 내용이 온전히 와닿는 책이었다. 글쓰기에 대한 심리적인 장벽도 무너뜨렸고.
특히 책에서 와닿았던 부분은 "쉬운 글을 쓰자"는 것. 대학시절동안 한자어와 비문 투성이의 전공서적을 보다보니 더 크게 와닿았다. "아니, 결국 일상생활에 흔히 있는 일들을 왜이렇게 어렵게 쓴거야?"라고 불평한 게 한두번이 아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정말 시기적절하게 만났다. 딱 내가 찾던 그 책이다. 그 순간부터 내게 일종의 지침서가 되었다. 나중에 내가 글을 쓰면 누구든 쉽게 읽고 이해할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3.
당장 눈 앞에 자소서가 있다. 자소서를 쓰는 순간마다 책에서 말한 바를 지키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여기저기 부족한 부분이 나왔다. 그럴 때마다 이런저런 지적을 받아가며 다듬었다. 결국 이런 말 하기 부끄럽지만 나중엔 가끔씩 칭찬도 받을 정도로 괜찮아졌다그래봤자 면접탈락(....).
자연히 뭔가 쓰는데 재미가 붙었다. 그렇게 시작한 게 이 블로그. 이내 블로그에 재미가 붙었고, 허슬 플레이(...)로 마구마구
텍스트를 적었다. 지금 봐도 정말 경이로울 정도의 생산능력(....). 비록 개드립이 난무하던 포스팅이 많았지만(....) 나름
재밌었다. 개드립을 칠 지언정 내 글이 삼천포로 빠지진 않았다. 그리고 글 쓰는 순간엔 정리가 원활하여 글을 쭉쭉 뽑았으니.
집중력도 좋았고..
4.
그러다 직장을 구했다. 당연히 회사일에 충실했다. 근데 업무 역량에서 내가 지금껏 쌓았던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그냥 이 업무에 내 강점은 별 쓸모없었다. 아니, 되려
거치적거렸다. 당장 주변을 둘러보니 동료들이 쓰는 기안에 비문이 넘쳐났다. 엄연히 우리말이 있음에도 동료들은 영어 단어를 먼저
썼다. 무조건 생소한 단어 섞어줘야 일 좀 하는 줄 아나보다. 좀만 까보면 X도 모르는 껍데기들 뿐인데. 다들 꼴보기 싫었지만
여기는 그런 곳이었다.
근데 어쩌겠나? 어떻게 들어온 곳인데, 일단 살아야지. 회사에서 요구하는 그 잘난 "역량"을 기르기 위해 매진했다. 당연히 업무량도, 책임 질 일도 많아진다. 다른 데 신경 쓸 여가가 없다. 근데 이 일에 흥미도, 목적도, 청사진도 안 보인다. 업무 만족도는 지구 내핵을 뚫을 기세로 폭락한다. 당연히 스트레스는 배로 쌓이고 남들보다 빨리 지친다. 그저 빨리 주말이 오길 바란다. 쉬고싶은 마음 뿐이다. 그렇게 주말이 오면 쉬기 바쁘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블로그? 언감생심이다.
결국 내가 못 버텼다. 번-아웃이 왔고, 목표를 잃었다. 내 강점이 사라졌다. 이젠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다. 집중력도 사라졌다. 눈이 흐리멍텅하다. 회사 평가는 최악이다. 이대로 가다간 인생 X되게 생겼다. 돈이고 아들노릇이고 뭐고 내가 죽게 생겼는데.
5.
굴레에서 벗어나니 몸과 마음이 금방 돌아왔다. 어느새 건강을 되찾았다.
근데, 글쓰기는 최악이다. 오히려 이 책 읽기 전보다도 더 안좋아졌다. 평생 통틀어 최악. 일단 내 말에 주어가 여럿이다. 당연히 말이 삼천포로 빠진다. 어휘력이 퇴보했다. 맨날 쓰던 단어만
쓰니 무슨 말을 하려해도 생각나지 않는다. 블로그에 뭔가 쓸 때마다 "예전엔 안 이랬는데..."라는 말만 반복한다. 여름동안 집중적으로 책을 읽어도 쉬이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갈고 닦아야 되는데...
그 순간, 이 책이 생각났다. 이젠 정말 소장해야지.
6.
책을 구입하려고 찾아보니 2017년 개정판이 나왔더라. 큰 변화는 없겠거니 하며 새 버전을 구입했다. 근데 단순 개정판이 아닌데...? 그때 그 느낌이 아니야(...). 결국 욕심내어 중고 서점에서[각주:2] 09년판까지 사서 다시 읽었다. 덜덜.. 물론 후회는 없다.
이 책이 처음 발간된 후 많은 호평을 얻고 글쓰기 카페까지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자의 상황이 달라졌는데, 그게 글에도 묻어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17년판에선 글에 힘이 느껴진다. 17년판이 09년판의 심화학습서 혹은 실전서 같은 느낌이라 하면 어울릴까나. 다르게 비유하자면.. 09년판이 옆에서 1:1로 조언한다면, 17년판은 20명 정도 되는 강의실에서 커리큘럼 있는 강의를 듣는 느낌? 내용에 큰 차이는 없지만, 세부적인 구성이 달라지고 예문도 2017년에 맞게 갱신되었다. 물론 두 책 모두 술술 읽히면서 쉽게 와닿는 건 똑같지만.
7.
혹시 이 책을 처음 접하신 분이라면.. 17년판 하나로 충분하다. 두 책 모두 좋다. 그렇지만 정말..정말.. 글을 1도 못 쓰는 사람이 책을 접한다면.. 09년도 판이 약간 더 와닿는다. 반면, 이제 1은 쓰기 시작했고 2나 3을 바란다면 17년도판이 도움될거고물론 17년판으로도 충분하다. 좀 더 글을 잘 쓰고 싶으신 분이 있다면 어느 판이든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한다. 추천!!
나 역시.. 이번에 다시 읽으며 내 글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부분이 부족한 지 명확히 보이더라. 그걸 고치는 건 앞으로 계속 노력해야겠지만. 이제 "내 책"이 되었으니 틈틈이 책을 참고하고자 한다. 필요한 부분엔 밑줄 쳐가며 이 책을 체득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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