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의 지름 이야기. - <200310> 체리 저소음 흑축 키보드 (+ 200327 키캡 구매)
전자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로망 중 하나가 바로 기계식 키보드일 것이다. 나도 그 중 하나였고. 하지만 내게 기계식 키보드는 먼 훗날의 막연한 이야기에 불과했다. 노트북 타입커버(키보드)를 잘 쓰고 있는 상황[각주:1]에서 굳이 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불과 지난달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이번 달 초에 갑작스레 키보드를 들였다. 앞서 말한 게 민망할 정도로 갑자기 샀다. 모든 건, 정말, 한꺼번에 몰아치더라...
3월 초, 어느새 이직한 지 1달이 갓 지난 시점이었다. 회사 분위기가 나쁘지 않아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회사생활을 하는 중이었고, (적어도 지금까진)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옥의 티가 딱 한가지 있었으니, 그건 바로 키보드였다.
여느 회사가 그렇듯이, 나 역시 입사하니 업무를 위한 모든 것이 자리에 배치되어 있었다(노트북이 아닌 데스크탑을 사용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차근차근 일을 하나씩 배워가는데, 이상하게 오타가 너무 많이 났다. 처음에는 곧 키보드에 적응하겠거니 했다. 하지만 1달이 지나도록 오타가 줄어들지 않았다. 특히 문제였던 건 기능키였는데, Ctrl이나 Alt, Shift 키를 누를랍시면 자꾸 윈도우 키, Z키, 키보드 모서리, 심할 땐 책상(ㅋㅋㅋ)을 누르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타이핑 소음때문에 키스킨을 사용하다 보니 도무지 키 감각이 생길 기미가 안보이더라.
그러다보니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전자기기와 관련하여 버벅이는 걸 조금도 못 참는 편인데, 키보드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때마침 몇몇 분들의 독특한 디자인의 키보드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걸 회사에서 지급할 리는 없고, 모두 개별적으로 키보드를 사온 것으로 보였다. 그래, 나도 내 키보드 하나 들이자.
서피스 타입커버. 손때가 잔뜩 묻어있다..
처음엔 그저 디자인이 예쁜 제품으로 하나 들일까 하다, 문득, 그분께서 오셨다. '이왕 살거면 제대로 한 번 사야지 않겠어? 예전부터 기계식 키보드 쓰고 싶어했잖아?' 그래, 이참에 기계식 하나 들여보자!
하지만 그 순간까지도 청축을 제외한 나머지 스위치에 대해선 거의 문외한이었다. 물론 청축 키보드로 사무실에서 우렁찬 소리를 내며 타이핑할 순 없는 노릇이고... 그 때부터 스위치 종류부터 검색했다. 청축 말고도 다양한 스위치가 있었다. 갈축, 백축, 적축, 흑축... 하지만 글만 봐선 선뜻 감이 오지 않았다. 다행히 용산 전자상가(나진상가)에서 직접 타건할 수 있다고 하여 찾아갔다.
키보드를 고를 때 2가지 요소를 중점적으로 봤다. 먼저, 기준으로 일단 사무실에서 쓰는거니 키스킨을 씌우지 않아도 최대한 타이핑 소리가 덜 나는 스위치를 쓰고 싶었다. 여기에 가장 적합한 것은 리니어 방식 스위치인 적축과 흑축이었다. 특히 저소음 적축이 매우 끌렸다. 흑축, 적축, 저소음 적축 모두 그 특유의 서걱서걱(?)하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그 다음으로는 타이핑 습관. 간혹 "키보드 부수러 왔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힘이 많이 들어가는 편이다(근데 그렇게 세게 치면서도 손목이나 손가락이 아팠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냥 타고난 모양...). 게다가 손가락도 제법 길어서[각주:2] 때론 꼬이기까지(그러면서 타이핑 중간에 오타나는 걸 별로 안좋아한다. 욕심도 많다....). 그래서 내 손가락 힘을 조금이나마 버텨줄 수 있는 묵직한 키보드였으면 했다. 여기에 맞는 건 흑축 하나였다. 적축은 너무 가벼웠고...
매장에서 어느정도 답을 찾았지만, 여전히 저소음 적축과 흑축 중 어떤 걸 사야하나 고민했다. 그래서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는 길에도 계속 검색했는데, 때마침 검색창에서 '저소음 흑축'이 연관검색어에 잡히더라. Aㅏ! 답이 나왔다. 나는 저소음 흑축으로 간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저소음 흑축 키보드를 찾기 시작했다. 비록 매장에서 직접 쳐보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저소음 적축보다 조금 더 무거운 거 빼면 비슷하겠지.
처음에 사려 했던 바밀로 VA104M. 출처 : http://funkeys.co.kr/shop/item.php?it_id=1514970142&ca_id=10
확실히 흔한 스위치가 아니라 청축이나 갈축, 적축에 비해 시판되는 제품의 가짓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품절된 제품이 많았고.[각주:3] 결국 제품을 찾지 못한 채 하루를 끝냈다. 아쉬운대로 판매업체 측에 입고일정 문의만 남겼다.
이튿날 오전, 잠시 쉬는 시간에 폰으로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제까지만 해도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제품이 눈에 띄었다. 그건 바로 체리 G80-3494. 보통 '체리축'이라는 스위치로 유명한 바로 그 곳이었다. 나야 당연히 키알못이니 여기서 키보드를 생산한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지만.. 약간의 할인이 들어가서 나쁘지 않은 가격에 저소음 흑축 키보드였고 사진상으로 바밀로 제품만큼은 아니지만 고전적인 디자인이 썩 나빠보이진 않았다. 심지어 현재 재고가 있어 당일에 배송이 시작된다고 했다.
그냥 지금 바로 지를까... 하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어제 문의를 남겼던 곳에 전화했다. 업체 측에 입고 일정을 확인해봤는데, 빨라도 이번달 말 혹은 다음달이 되어야 재고를 확보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1주 내외면 어떻게 참았겠지만, 3~4주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결국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물품을 주문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에 물품이 도착했고,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키보드를 설치했다.
박스만 보면 그렇게 설렌다. -고양이니?-
심플한 제품 박스. 구성품도 심플하게 키보드와 PC-2 포트, 사용설명서, 품질보증서가 전부.
키보드. 컴퓨터에 연결하니 오른쪽에 불이 들어왔다.
설치를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자기기에 대해 잘 아는)다른 분이 내 키보드를 보며 말했다. "이야, 이거 책상에 전차 하나 들어왔구만~~ 큼직~하다!!' 씨익 웃으며 한 번 눌러보라고 했다. 확실히 반응이 좋더라. 생각 이상으로 키감이 좋다고...[각주:4] 그러고선 다시 업무시간이 되어 일상으로 돌아왔다. 키보드는 지금 책상 위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고, 박스와 품질보증서, 사용설명서는 집으로 고이 모셔왔다. 그리고는, 별다를 것 없는 하루가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오늘. 이젠 어느새 3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언박싱
사진을 찍었던 게 엊그제같은데 벌써 보름이 지났다. 정말 시간이 빨리 흐른다. 업무는 이전과 다를 거 없이 한결같고, 업무 중 특별히 문서작업 할 일이
생기진 않았다. 그래도 키보드로 타이핑할 때마다 만족하고 있다. 물론 100% 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키 접사(?).
이쯤에서 체리 G80-3494 키보드를 보름간 사용한 후기를 간단히 적어보겠다.
일단 키보드가 크다. 정말 크다. 괜히 전차라고 한 게 아니다. 하지만 보강판이 없기 때문에 보기와 달리 가볍다. 체감상 멤브레인 키보드랑 거의 비슷한 듯? 반면, 크디큰 키보드 크기와 달리 각 키캡의 크기는 평균 혹은 그 이하로 작은 편이다. 키보드가 크다보니 한층 대비되어 보인다. 물론 손가락이 가는 편인 필자에겐 딱 맞았지만, 손가락이 굵으신 분이라면 다소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다음으로, 저소음 흑축 특유의 서걱서걱(?)하는 키감이 정말 마음에 든다. 저소음 적축이랑 비슷한 키감인데 흑축이 조금 더 쫄깃한 듯. 묵직한 건 사실... 그렇게까지 큰 차이는 못 느꼈다. 위에도 말했지만 타자를 정말 세게 치는 편이라 키 압력에 둔감해서 그런 듯. 오히려 키압이 높아서 상대적으로 엉뚱한 버튼을 누름으로 인한 오타는 줄어들었다. 내 스타일에는 저소음이건 아니건 흑축이 짱인 듯(아니면 청축이랑 같은 클릭 방식이지만 키압이 높은 녹축도 괜찮겠다).
다만, 보강판이 없다보니 타이핑을 할 때마다 속이 비어있어 텅텅 울리는 느낌이 난다. 분명 딸깍 소리는 안나지만, 제품의 텅 빈 부분을 쳤을 때 울리는 느낌이 약간 있다. 스프링에 윤활이 제대로 안됐을 때 스프링 소리가 난다고는 하지만, 그것과는 약간 다른 느낌으로 울리는 듯하다. 아마 키보드에 보강판이 없다보니 내가 타이핑하는 힘이 그대로 키보드에 전달되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디자인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단조롭다. 체리 마크는 예쁘지만, 그걸 제외하면 특색이라 할만한 게 없다보니 뭔가 심심하다. 만약 흰색을 살 수
있다면 흰색이 나을 듯(물론 해외에서 직구해야 한다. 국내 유통사에서 판매중인 건 블랙 뿐..). 뭔가 보급받은 키보드랑 차이가 없어보이기도 해서 아쉽다.
그래서 결국... 키보드 키캡을 찾기로 결심했다. 그 중 먼저 키보드 키캡부터 구했다. 이참에 클래식의 끝을 찍어보고 싶었다. 현재 체리 공식판매 페이지(주삼맨)에서 GMK 키캡을 판매중이지만, (아무리 제값을 한다 해도)너무 비쌌다. 17만원은 좀... 그래서 비슷한 디자인(색상)의 다소 저렴한 제품을 검색했고, 그 중 키아노에 있는 PBT 제품으로 결정하여 구매했다. 아마 오늘 중 물품이 집에 도착할 듯. 그에 맞춰 오늘 퇴근길에 키보드를 집에 가져올 예정이다. 집에서 눈치안보고 맘편히 분해하며 키캡을 바꾸려고 한다. 이와 더불어 윤활 오일도 주문했다. 내일 중에 도착하겠지.
+ 200328 내용 추가 및 수정
그리고 어제 오후, 택배 아저씨로부터 물품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마침 마음이 축축 처져서 스트래스 배출구가 필요했던 나는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곧장 달려갔다. 집 문 앞에서 키캡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어떨까...?
비닐로 택배 포장을 뜯으니 뽁뽁이에 둘러싸인 제품 박스가 있었다. 두근두근..
오오, 예쁘다!!! *_*
웹페이지에서 본 것 이상으로 키캡 색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이제 겨우 보름 썼는데 키보드에 손때가...
퇴근길에 가져온 키보드와 함께 한 컷.
어느새 저녁 7시가 다 된 시간이라 일단 밥부터 먹고 올까 하다 하나만 해보자며 키캡 리무버를 집어들었다. (당연하지만)지금까지 한 번도 안해봤던지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한 번 시험삼아 해보고 싶었다. 먼저 유튜브 영상을 다시 보고, esc 키캡을 제거한 후 새 키캡으로 갈아끼웠다. 난생 첫 키보드 커스티마이징이었다. 처음엔 키캡이 긁힐까봐 너무 살살 하는 바람에 키캡이 잘 안 뽑혔으나, 이내 적응하여 거침없이 갈아끼웠다.
하나 하니 하나 더 하게되고, 하나만 더, 또 하나만 더, 이제 여기까지만.... 이 이어지다 보니 결국 밥 먹으러 가는 esc도 함께 막혔다. 그렇게 결국.....
이게 뭐라고 2시간이 순삭됐다...
104키 모두 갈아끼우자마자 바로 위 사진과 같은 구도로 인증샷 하나 남겼다.
박스와 함께.
내가 생각한 바로 그 그림! 정말 만족스럽다.
다행히 오늘 장착한 키캡이 매우 만족스럽다. 소위 말하는 '엣지'가 느껴진다. 순정 키캡은 다소 밋밋한 감이 있었는데, 키캡 덕분에 키보드가 드디어 완성된 듯하다. 이 맛에 현질...아니, 튜닝하나 보다. 그 전까지만 해도 계속 돈이 샐까봐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열릴 뻔했던 판도라의 상자가 다시 닫혔다. :)
정말 잘 샀다..!! :) 고작 며칠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키보드, 그리고 키캡에 왜 그렇게 투자하는지 확실히 알겠더라. 다만 공수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자주 바꾸진 못하겠다. 귀찮아... 그래서 윤활을 굳이 해야하나 고민중이다. 물건은 내일 도착하지만 굳이 안해도 될 것 같고.. 아무쪼록 조금 더 고민해봐야지.
...는 결국 조금 전에 키보드 윤활까지 모두 완료했다!! 스위치 빼내다 보드 부술까봐 그냥 간이윤활[각주:5]만 했는데도 그 효과가 확연하다. 눈에 띄게 타이핑이 조용해졌을 뿐만 아니라, 타이핑 감이 한층 묵직해졌다. 그래, 이래야 흑축이지..!!!
이제 본격적으로 기계식 키보드에 발들인 만큼, 앞으로도 소중히, 오래오래 쓰고프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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