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정유정 - 종의 기원
올 봄에 7년의 밤의 진입장벽을 뛰어넘고 28까지 거침없이 휘몰아쳤지만, 종의 기원은 약간 텀을 두고 읽고 싶었다. 그렇게 다른 책들을 읽으며 3달이 지났다. 날이 어느새 더워졌고, 이젠 정말 '싸이코패스 3부작'의 정점을 찍을 때가 왔다. 도서관에서 정유정의 책을 빌려왔다.
책을 펼치기 전에 가지고 있던 사전정보라곤 그저.. 정유정 작가의 대표작 시리즈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란 것 정도? 백지 상태에서 들어갔다. 앞의 두 작품 모두 감명깊게 읽었기에 이번엔 또 어떤 세계에 들어갈 지 기대했다.
놀라운 통찰력으로 ‘악’의 심연을 치밀하게 그리다!
펴내는 작품마다 압도적인 서사와 폭발적인 이야기의 힘으로 많은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온 작가 정유정의 장편소설 『종의 기원』. 전작 《28》 이후 3년 만에 펴낸 이 작품에서 정유정의
상상력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빛을 발한다. 미지의 세계가 아닌 인간, 그 내면 깊숙한 곳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지금껏 ‘악’에
대한 시선을 집요하게 유지해온 작가는 이번 작품에 이르러 ‘악’ 그 자체가 되었다.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정유정만의 독보적인 스타일로 ‘악’에 대한 한층 더 세련되고 깊이 있는 통찰을 선보인다. 어린 시절부터 학습돼 온 도덕과 교육,
윤리적 세계관을 철저하게 깨나감으로써 비로소 평범했던 한 청년이 살인자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 ‘악인의 탄생기’를 완성시킨
것이다.
가족여행에서 사고로 아버지와 한 살 터울의 형을 잃은 후 정신과 의사인 이모가 처방해준 정체불명의 약을 매일
거르지 않고 먹기 시작한 유진은 주목받는 수영선수로 활약하던 열여섯 살에 약을 끊고 경기에 출전했다가 그 대가로 경기 도중 첫
번째 발작을 일으키고 선수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없이 몸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약과 늘 주눅 들게 하는 어머니의 철저한 규칙,
그리고 자신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듯한 기분 나쁜 이모의 감시 아래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없었던 유진은 가끔씩 약을 끊고 어머니
몰래 밤 외출을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왔다.
이번에도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을 며칠간 끊은 상태였고, 그래서 전날 밤
‘개병’이 도져 외출을 했었던 유진은 자리에 누워 곧 시작될 발작을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의 집에 양자로 들어와 형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해진의 전화를 받는다. 어젯밤부터 어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집에 별일 없는지 묻는 해진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유진은 피투성이인 방 안과, 마찬가지로 피범벅이 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핏자국을 따라, 아파트 복층에 있는 자기 방에서
나와 계단을 지나 거실로 내려온 유진은 끔찍하게 살해된 어머니의 시신을 보게 되는데…….
처음에 읽을때만 해도 앞의 두 작품과 이야기 구성과 비슷할거라 생각했다. 초반에 작품 속 당연히 주인공이 실수하고 싸이코패스에게 괴롭힘당하다 싸울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초반에 주인공에게 엄한 일이 일어날 때만 해도 또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누구 짓인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근데, 이번엔 지난 두 작품만큼 초반부에 독자에게 상세히 어떤 상황인지 털어놓지 않는다. 뭔가 퍼즐을 의도적으로 구석에 쟁여두고 보여주고 싶은 퍼즐만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설명보단 주인공 본인의 감정묘사에 치중했다. 지금까진 작가가 여러 인물의 시점에서 상황 및 심리 묘사가 된 반면, 이번엔 오로지 주인공의 눈으로만 진행되었기에 그랬을지도..
그렇게 이야기를 찬찬히 따라가는데, 어째 가면 갈수록 이상하다..? 뭔가 싸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 베일이 하나하나 밝혀졌다.
아니, 주인공의 '치부'가 드러났다. 보통 정유정 작가의 작품마다 싸이코패스가 하나씩 나오는데, 그 싸이코패스가 이번 작품엔
주인공 본인이었다(....). 아, 의도적으로 숨겼구나...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오로지 자기변명과 회피, 합리화에 급급한
인간쓰레기. 1급 프레데터, 최상위 포식자. 하나하나 밝혀지며 한유진이란 인간의 추악한 민낯이 까발려진다. 그 와중에도 정당화하기
바쁘다. 이 세상의 모든 법, 도덕이 파괴된다.
끝까지 읽고 보니 이 작품에서 초반에 왜 지난번만큼 상세히 설명하지 않았는지 이해했다. 주변에서 싸이코패스를 지켜보는 것만으론 부족했나보다. 이젠 정말 싸이코패스가 되어 파고들었다. 싸이코패스가 으레 그렇듯, 그들은 남을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주변 인물들은 도구일 뿐이다. 그러니 쳐다보는 게 시간낭비일 뿐. 싸이코패스의 속내를 낱낱이 그려내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했겠지.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작가가 몇 번이고 갈아엎었다고 했는데, 왜 그랬는지 충분히 공감했다. 저세상 사고방식을 담아내야 하는데 말만 들어도 어렵구만..
지난 2번의 작품에선 싸이코패스가 있었음에도 일말의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지만, 이번엔 그딴 거 없었다. 그야말로 한유진 본인만
노났을, 정말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엔딩이었다. 아주 찜찜하다. 좀 격하게 말하자면... 치가 떨릴 정도로 ㅈ같은 엔딩이다.[각주:1] 아오 진짜!!
싸이코패스 3부작의 정점을 찍었다. 그야말로 악의 끝을 보고 왔다.
- 글이 이상하단 게 아니다. 그냥 비극 중의 비극이란 뜻.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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