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의 지름 이야기. (30) - <250222> 윌슨 프로스태프 V13 (Wilson Pro Staff V13) + 짤막한 시말서
누군가 내게 실물로 봤던 라켓 중에 가장 간지나고 예쁜 라켓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난 주저 없이 윌슨 프로스태프 V13이라 말하겠다.
이 녀석의 실물을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프로스태프 V13만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라켓은 보지 못했다. 오죽했음 그 강렬한 인상 때문에 처음으로 지른 새 라켓도 noir 에디션이었을까. 그렇지만 저 글을 썼을 때 이미 V14가 출시된 후였던지라 매장에서 V13을 구할 순 없었고(저 여성용 제품마저도 딱 하나 남은 라켓이었다), 인연이 아니겠거니 하며 마음을 접었다.
그 후로 여러 라켓을 구입해서 썼다. 이래저래 만족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6개월에 한 번 꼴로 라켓을 바꾸며 블로그에 지름글도 올렸다. 그러다 작년 여름 RF01을 들였을 땐 만족도도 높았기에(비교글도 올렸다), 길고 긴 라켓 욕심에서 벗어나 RF01에 정착할 것으로 믿었다. 자연히 신제품에 대한 관심이 확 식었고, 내 스트로크와 서브, 발리에 대한 고민이 주된 관심사였다.
지난 주말 아침까지만 해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약 반나절 후, 난 새 라켓을 손에 쥐고 쥐고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니 노말원씨, 이중인격자세요?라고 말할까 봐 그 히스토리 중 일부는 아래에 접어뒀다. 접은 글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토요일 낮에 테니스 게임을 하던 중 라켓 프레임에 금이 가서 새로 사야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는 이야기다.
반드시 필요한, 그리고 개인적으로 깊이 새겨야 할 히스토리지만.. 지름글이란 주제엔 썩 어울리지 않는 데다 글이 늘어지기까지 하여 넣어뒀다. 읽지 않아도 글 읽는 덴 문제없으니 바로 넘어가자.
당연히 지난 주말 단식 게임을 치러 가기 전까지만 해도 경험치를 쌓고 내 스트로크를 좀 더 다듬을 생각으로 가득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어느새 스트링을 바꾼 지 2달이 넘었기에 슬슬 스트링을 교체할 때가 되었다는 걱정뿐이었다. 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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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라켓 프레임에 금이 갔다. 이게 불의의 사고였음 억울하기라도 하겠지만, 200% 내 잘못이었다. 공이 너무 안 맞은 데다 상대가 공 주는 스타일이 나랑 전혀 맞지 않았고, 거기에 나 스스로에 대한 짜증이 폭발하여 라켓을 땅에 내리쳤다. 그래도 TV에 나오는 선수들처럼 대놓고 부수듯이 후려친 건 아니어서 그냥 게임을 끝냈는데...
게임을 말아먹고 물 한 모금 마시며 원망하듯 라켓을 보는데, 어...? 라켓에 금이 쫙. 그 순간, 자괴감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당장 남은 게임이야 함께 들고 온 블레이드 라켓이 있어 문제없었지만, 수치심이 남은 시간 동안 날 뒤덮었다. 아무리 추운 날에 라켓이 상하기 쉽다지만, 그렇게 세게 안 쳤다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 자체만으로 실드가 불가능했다.
테니스를 치고 집에 가는 내내 나 자신에게 (속으로)온갖 육두문자와 맹비난, 폭언을 퍼부었다.
"노말원 🤬🤬🤬야, 니 그 🤬같은 🤬🤬🤬 때문에 35만 원을 허공에 뿌려? 라켓이 잘못했어? 이거 니가 테니스를 🤬🤬🤬같이 쳐놓곤 왜 라켓에 🤬🤬🤬이야? 🤬🤬🤬🤬야, 그렇게 니 스윙이 🤬같으면 🤬🤬🤬 떨 시간에 스윙 연습이나 더 하라고 🤬🤬아!" [각주:1]
하지만 마냥 자책만 할 상황은 아니었다. 당장 다음 주부터 써야 할 라켓이 필요했다. 금전적으로 생각한다면 블레이드를 다시 써야겠지만, 이 라켓으로는 앞으로도 게임을 치를 자신이 없었고, 연말정산으로 받은 게 있어서(....) 이참에 다른 라켓을 하나 들이기로 했다.
테니스를 끝낸 후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집으로 가는 약 1시간의 동안 고민했다. 지금 당장 구할 수 있는 건 RF01이었다. 게다가 평소에 딱히 그 라켓이 불만족스러웠던 건 아니어서 바로 가면 됐다. 하지만 윌슨 매장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헤드 스피드나 그래비티도 있지만, 라켓 특성도 잘 모르는데 무턱대고 넘어가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럼 뭘 사려고? 딱히 답은 보이지 않았다.
* 앞으로 다시는 지난 주말과 같은 실수를 반복치 않도록 블로그에 대놓고 치부를 드러냈다. 반성하자 정말. 어디 프로선수들처럼 라켓이 협찬으로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순간의 감정에 못 이겨 그런 멍청한 짓을 하니? 혹 협찬을 받는다 한들, 정말 테니스 실력을 늘리고 강력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싶다면 감정을 표출할 에너지를 스윙하는 데 쏟았으면 한다.
테니스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집으로 가는 내내 고민하던 중이었다. 언젠가 심심풀이로 당근을 보다 눈에 들어왔던 윌슨 프로스태프 V13이 생각났다. 그 글이나 한 번 보고 생각해 보자며 당근 앱에 들어갔고, 여전히 판매중이었다. 흠, 차라리 이걸 살까... 하는데 그 아래에... 프로스태프 V13 신품 판매글이 있었다!! 당근에서 프로스태프 V13 신품을 구할 수 있다니?!! 그것도 무려 미개봉 신품!?!?
그 순간, 눈이 돌아갔다. 이건 완전 기회잖아!! 최고의 워너비가 눈 앞에 있는데! 아, 물론 안다, 이 라켓 어렵다는 걸. 그럼에도 가지고 싶었다. (순전히 개인 취향이지만)디자인만 봤을 때 지금까지 본 라켓 중 가장 내 스타일에 왠벽히 부합하기에 놓칠 수 없었다.
망설임 없이 메세지를 드렸다. 바로 답장이 왔고, 포장도 안 뜯은 새 제품이라 하였다. 언제 거래할 수 있을지, 아니 지금 바로 거래 가능한지 물어봤는데, 약 2시간 후에 거래가 가능하다고 하였고, 장소까지 이야기를 마쳤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당근 앱으로 약속을 만들었을 때 집 앞 골목에 도착했었으니.. 불과 30분 남짓한 시간에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갑자기 '아다리'가 이렇게 잘 맞다니?
집에서 씻고 좀 쉬다 약속시간에 맞춰 거래 장소에 갔고, 물건을 확인한 후 거래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알고보니 해외에서 직구하는 과정에 주문 실수로 1개를 더 샀다더라. 해외 직구니 복잡하게 환불하고 그러는 것보다 간편히 당근으로 처분하려 했던 듯. 원래는 박스도 미개봉이었으나 물품 확인 때문에 박스를 연 게 차이라면 차이일까..
그렇게 집에 다시 돌아왔다. 원래라면 그토록 원하던 물건을 손에 넣었으니 잔뜩 신났겠지만, 이번엔 그럴 상황은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나 자신에게 어이없어하며 언박싱 했고, 간단히 사진을 몇 장 남겼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평소 스트링작업을 자주 맡기는 테니스 용품점에 스트링 작업을 맡기러 갔다. 알루파워로 할까 하다 작년에 사서 하나 남아있던 다이아뎀 프로X 스트링으로 했다. 처음 작업하는 것이니만큼 기분도 낼 겸 스텐실 작업까지 했다. 여기에 오버그림은 덤.
스트링에 스텐실까지 하니 없던 윌슨뽕(...)도 생기는 듯 했다.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웠다. 라켓만 봐도 페더러의 우아함이 전해진달까? 물론 지난번에 질렀던 블레이드나 RF01도 하나같이 영롱했지만, 이번엔 신기루라 여겼던 존재가 현실이 되어 내 품에 안긴거라 그 감회가 특히 남달랐다. 마치 순수한 꿈을 이룬 것마냥...
여전히 마음 한켠엔 어제의 그 실수에 대한 잔상이 남아있지만 그걸 자양분으로 삼아 지금 라켓을 더 소중히 아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 마음을 담아 집에 도착하여, 스트링 작업이 끝난 라켓을 카메라에 담았다.
모든 세팅을 끝내니 당장 코트에 나가고 싶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라켓이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한테 맞는지 아닌지를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혹시 안맞으면 빨리 당근으로 처분하는 게 맞을테니..). 때마침 지난 화요일에 볼일이 있어 오후 반차를 썼고, 때마침 그 볼일이 끝난 후의 어떤 시간에 랠리 파트너 모집글이 올라왔다. 그렇게 화요일 이른 저녁에 짧게나마 랠리를 치고 왔다.
디자인은 맘에 들지만 어렵기로 정평이 난 라켓이라 내심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칠 만했다. 기존에 쓰던 RF01보다 15g 무거웠는데 살짝 더 무거운 정도? 그 무게가 크게 체감될 정도는 아니었고, 덕분에 그 부분이 딱히 신경쓰이진 않았다. 되려 타이밍 안맞을 때 무게로 욱여넣기가 돼서 오히려 좋아?! 물론 한두번 정도 나온 프레임샷이야 100빵 98빵 라켓 쓸 때도 똑같았으니 뭐..
무엇보다 정타가 됐을 때 시원하게 나가는 게 일품이었는데, 손맛이 좋다는 표현이 단번에 이해됐다. 게다가 잘 맞았을 때 멀리 날아가는 느낌이 아니라 더 좋았다. 나한텐 블레이드보다 RF가, RF보다 프로스태프가 더 좋은듯? 같이 친 분 말로는 공이 날카롭게 꽂힌다던데, 내가 봐도 정타일 때 탄도가 많이 낮아진 듯했다.
그치먼 이제 겨우 한 번이고, 상대적으로 공이 느린 분이랑 쳤기에[각주:2] 판단은 나중에 할 것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썼던 라켓 중 첫 느낌이 가장 좋았다. 이제 다가오는 밤에 게임이 있고 남성분도 게시니 한번 더 체크하는 걸로(혹시 정말 아니다 싶음 팔아야하니까...). 두어번 더 치고서 본 글에 내용 추가하기로 하고, 오늘의 지름 포스팅은 이 쯤에서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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