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김시덕 - 갈등 도시
작년 여름, 딱히 할 일 없이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책 표지들을 훑어보다 눈에 들어온 책이다. 여러분들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평소에 도시의 골목길을 걷는 걸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당시만 해도 이미 읽고 있었던 책이 몇 권 있었기에 딱히 구매욕구가 생기진 않았다.
그러다 가을쯤이었나..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다시 눈에 띄었다. 때마침 그땐 새로 읽을 책을 찾고 있었기에, 이번엔 목차를 훑어봤다. 말 그대로 서울 구석구석+경기도까지 돌아다니셨구나.. 근데 다시 책장을 보니 2권 정도가 진열되어 있었다. 벌써부터 중고매장에 나왔다는 게 다소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단순히 취향에 안 맞아서 방출했을 수도 있으니 일단 속는 셈 치고 책을 구매했다.
도시의 맨 밑바닥을 산책하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소 김시덕 교수가 서울에 인접한 경기도까지 답사 범위를 넓혀 재개발이 예정된 불량 가옥과 성매매 집결지, 이름 없는 마을 비석과 어디에 놓여 있는지 찾기도 힘든 머릿돌들까지 살펴보며 시민들이 갈등하며 살아가고 또 죽어 간 이야기들을 수집해 들려주는 『갈등 도시』.
저자는 자신의 현 거주지인 관악구 봉천동에서 시작하여 시계 방향으로 대서울을 차근차근 기록해 나간다. 총 20개의 답사 코스는 크게 세 가지로 묶을 수 있다. 서울시를 중심으로 북쪽의 파주부터 남쪽의 시흥까지 서부를 훑는 ‘경인 메갈로폴리스의 축’이 하나, 종로구와 중구와 용산구를 깊게 들여다보는 ‘대서울의 한가운데’ 답사가 두 번째, 북쪽의 의정부부터 남쪽의 용인까지 서울 동쪽을 아우르는 것이 세 번째이다.
조선 왕조를 찬양하는 건축이나, 일제 강점기의 아픈 유산을 돌아보는 답사도 좋지만, 그것이 서울의 전부일 리는 없다. 거대하고 아름다운 구조물만이 서울의 역사를 말해 주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재개발 동네의 벽보, 이재민과 실향민의 마을 비석, 부군당과 미군 위안부 수용 시설에도 시민의 역사와 스토리가 담겨 있다고 이야기하며 이런 답사기야말로 표백된 서울이 아니라 진짜 서울의 역사를 만나는 시간임을 일깨워준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그런데 괜히 방출된 게 아니었을까? 처음엔 도통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생각 외로 모르는 내용이 많아 낯설었다. 당연히 내용이 쉽게 와 닿지 않았고, 읽는 속도도 자연스레 더뎌졌다. 잠시나마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던 걸까 싶어 걱정했다. '아, 괜히 중고 서점에 있었던 게 아니었나...?'
그 순간, 반전이 일어났다. 바로 저자가 (적어도 책 집필 당시에는)서울대 근처에 살고 계셨던 것. 본격적인 이야기도 봉천동부터 시작되었다. 이 동네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친숙한 동네였다. 당연히 글에 나오는 골목들, 건물들이 낯익었다. 자연스레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본격적으로 책에 빠져들었다. 만약 그 고비에서 다른 동네가 나왔다면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었는데, 여로모로 운이 좋았다.
아무튼, 이 때부터 다른 동네에 대한 이야기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때론 낯선 동네가 나와 거리감이 생길 듯하다 이내 관심이 있었던, 혹은 평소에 자주 들르는 동네가 나왔고, 흥미를 유지했다. 특히 눈길이 갔던 건 을지로와 구룡마을. 을지로는 요즘 가장 자주 드닐던 곳이기에 내가 못 봤던 부분을 확인했고, 구룡마을은 예전부터 궁금했던 곳이기에 사전 답사하는 느낌으로 유심히 눈에 담았다(구룡마을은 실제로 다녀오기도 했고..).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온 건 서울 근교 도시들. 특히 성남과 의정부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부터 '광주대단지사건'과 '상계동 올림픽' 등에 대한 이야기를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기에 더 눈여겨봤다. 그리고 도시의 변천사가 한눈에 들어왔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현대 서울 역사의 모순도 목격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살아있는 현대사 서적이었다.
책을 읽고나니 오래된 건물들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서울 곳곳에서 여러 시기에 지어진 건물들이 '병존'하는 풍경을 틈틈이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이 책은 내게 일종의 지침서가 되었다. 그와 함께 책에 언급된 다른 곳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하나하나 가보는 중이다(필카로 담은 결과물도 여러 번 올렸고...). 덕분에 서울을 조금 더 깊이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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