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유발 하라리 - 사피엔스
어느 주말, 종로에 갔다. 종로에 가면 항상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른다. 여느 때처럼 종각역을 거쳐 교보문고 정문을 통과했는데, 눈앞에 이 책이 단독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평소였으면 유명한 책이겠거니 하며 지나쳤을 텐데, 그날따라 이 녀석이 날 강렬히 끌어들였다. '넌 이 책을 사야만 해..!'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책 겉표지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뒤표지에 적힌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추천사가 눈에 들어온다. 읽고 싶다..! 마침 새로 읽을만한 책을 찾고 있었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름신에 정복당했다. 결국 다음날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책을 구입했고,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인간이라고 할 것인가
지금으로부터 10만 년 전, 지구에는 호모 사피엔스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등 최소 6종의 인간 종이 살아 있었다. 이후 호모 사피엔스 종만이 유일한 승자로 지구상에 살아남게 되었고, 이제
그들은 신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사피엔스』는 이처럼 중요한 순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에 대해 어떤 전망이
있는지, 지금이 전망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한다.
저자는 “앞으로 몇십 년 지나지 않아, 유전공학과 생명공학 기술
덕분에 인간의 생리기능, 면역계, 수명뿐 아니라 지적, 정서적 능력까지 크게 변화시킬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이런 기술 발달은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아니다. 부자들은 영원히 살고, 가난한 사람들은 죽어야 하는 세상이 곧 도래할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우울한 이야기만 풀어놓는 것은 아니다. 그는 행복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고, 행복에 대한 가능성 역시 더 많이 열려 있다고 말하며, 일말의 여지를 남긴다. 이제, 인류가 멸종할 것인지, 더 나은
진보를 이룩할 것인지, 어떤 것에 방점을 두고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일단 시작부터 재밌었다. 종간 싸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신선했다. 사실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에서 호모 사피엔스까지 1:1로 진화 과정을 거쳐온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바로잡았다. 그러면서 '협력 능력'[각주:1]을 바탕으로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이긴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어나갔다. 하지만 지구를 지배한 사피엔스로 인해 수많은 생물이 멸종하고 변이되는 과정을 지켜보자니 호모 사피엔스가 정말 '졸부'같이 보였다.
곧이어 문자가 나타나고 신화와 상상 속의 질서(화폐, 제국, 종교(혹은 이데올로기))가 구성되어 전 세계의 인류가 조금씩 통합되는 과정을 보다 보니 어느새 농업혁명을 넘어 과학혁명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절반 조금 넘게 읽었는데 벌써 20여만 년의 역사를 다룬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앞으로 남은 4~500여 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 새삼 현대의 변화가 엄청나다는 게 피부로 와닿았다.
그 중간에 인상적이었던 내용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자연과 문화의 차이. 자연은 완전하지만 문화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하다. 생각해보면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건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 사람이 빛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게 하거나, 음전자끼리 서로 끌리지 못하게 금지시킨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듯이. 반면, 최소한 생물학적인 관점에선 인간이 동성 간 성관계를 통해 쾌락을 얻을 순 있다. 단지 그 행위에 대한 가치판단이 '가치관'이나 '문화'에 따라 다를 뿐이다. 고로, 저자가 말한 기준인 '자연은 가능하게 하고 문화는 금지한다'라는 말을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문화의 민낯이었다.
산업혁명을 비롯한 과학혁명 부분을 보며 유럽이 세계의 공백을 메워가며 아시아에 우위를 점하는 모습을 생생히 지켜봤다. 유럽과 아시아의 가장 큰 차이는 '무지'를 아느냐는 것. 유럽에서는 자신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알기 위해 매진했고, 이로 인해 과학, 산업이 발전했으며 고대의 문화를 발견했다. 그와 함께 제국주의가 성행하고, 자본주의[각주:2]가 활성화되고... 그 외에도 여기에 일일이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것들이 변했더라. 톱니바퀴처럼 물려있는 인과관계를 보며 작은 변화가 이렇게까지 나비효과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경이로웠다.
현대에 접어들어, 인간은 이제 자신들을 파멸시키고 생명의 법칙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얻었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행복하지 않고, 그 어느 때보다도 무책임하다. 글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여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경각심을 일으키며 글을 맺는다. 이게 바로 그가 하고 싶은 말로서, 결국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 진정한 인류의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발전시키고자 화두를 던진 것이라 본다. 옮긴이에 따르면 저자가 말한 내용 중 일부(인간의 지능, 과학 혁명의 급진성)에 대하여 반론이 많지만, 증명 여부를 문제를 떠나 저자의 새로운 시각에 따른 문제의식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한 편의 서사를 완독했다. 인류사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그것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것은 처음이었다. 3가지의 혁명을 기준으로 삼아 각 시대별 특징, 인류의 습성을 하나하나 짚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그 뼈대 혹은 체계가 단단했기에 제법 두꺼운 책임에도 길을 잃지 않았다. 게다가 직관적인 언어를 통해 간단하고 명쾌하게 글을 써 내려갈 뿐만 아니라 적재적소에 다양한 컬러 자료를 곁들인 덕에 이해하고 몰입하기에 한결 수월했다.
물론, 이는 2년여 전에 '총, 균, 쇠'를 (억지로라도) 읽었던 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던 듯하다. 아무래도 거의 비슷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내용이 낯익더라. 특히 농업혁명 부분에서 가축과 식량 이야기가 나올 땐 자연스레 키워드들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물론 총, 균, 쇠는 궁극적인 기준점이 '지역'이라면 이 책은 '시간'에 따른 서술을 한 책이었다는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읽었을 때 그 시너지가 큰 것만은 분명하다. 예전에 '총, 균, 쇠'를 처음 읽었을 땐 키워드 몇 개 빼면 머리에서 금방 날아갔는데, 지금 다시 읽는다면 새로이 보이지 않을까 예상한다.
앞으로도 꾸준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니 만큼 인류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 책이 자꾸 떠오를 것 같다. 좋은 글을 읽어 뿌듯하다. 글을 통해 깊은 생각을 할 기회를 준 저자에게 이렇게 활자로나마 감사하다는 말 전하며 글을 맺겠다.
2019년에 마지막으로 완독한 책이 이 책이라 뿌듯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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