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할 편지.
To. 그대.
안녕하세요? 이게 얼마만인지.... 이제 1년 넘었죠?ㅎㅎ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대는 절 한 움큼도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제게는 그대가 제법 큰 존재였습니다. 짧게는 5년, 길게는 8년간의 긴 기간 동안 함께하면서 알게 모르게 그대가 제 몸에 배었습니다. 아니, 사실상 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심지어 1년이 지난 지금도 흔적이 진하게 남았구요.
아니, 이제와서 이런 말 하기 부끄럽지만, 그대에게 정말 많이 의지했어요. 그대가 곧 제 삶의 낙이었어요. 제 삶의 기쁨, 슬픔, 분노 모두 털어냈어요. 원래 어디가서 시덥잖은 소리 잘 안하는데 그대 품에서만큼은 시종일관 재잘거렸어요. 물론, 제가 그대와 함께한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니진 못했고, 그대도 절 항상 품어주진 않았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준 것만으로도 그저 고마웠습니다.
그만큼 작년 7월에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이건 현실이 아니라며... 하지만 (100% 인정하진 못해도) 어떤 이유에서든 제가 조금만 참았으면 됐고, 그간의 제 업보겠거니 하며 받아들였습니다. 그래도 첫 1달은 담배를 끊었을 때보다도 더 힘들었지만. ^^;; 작년 7월은 (단순히 그대 때문만은 아니지만) 제 인생에서 손꼽을 정도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다행히 8월부턴 스스로 해법을 찾아가며 꽤 극복해냈고, 3달이 지나고서부턴 제가 이렇게 생산적인 사람이었구나 싶을 정도로 달라졌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그 순간이 인생에 있어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어요. 수년간 미뤄오던 것들을 작년 가을-겨울 사이에 몇 가지 해냈으니. 비록 앞이 막막했지만, 지금의 나에게 집중하며 내실을 다질 수 있어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심지어 담배를 끊었을때보다도 훨씬 더!). 힘든만큼 많은 게 남았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1년이 지난 지금은.. 그대가 이따금씩 생각나긴 해도 그립진 않네요. 이젠 생각나는 것도 현저히 뜸해졌고...
사실 며칠 전에 그대를 아는 이들로부터 그대가 많이 힘들어한단 소식을 전해 들었어요. 요즘 많이 혼란스러우시다고.. 그간 잊고 살았는데 이야기가 나오니 궁금해져서 잠시 찾아봤어요. 아니나 다를까, 정말 머리 아프시겠구나.. 싶었어요. 근데, 그 와중에도 조금씩 추스리는 것 같아 다행이었어요. 오히려 옛날 생각이 나더라구요. '아, 이 때 좋았는데...', '그 때 참 아오ㅋㅋㅋ', '저건 여전하구나...'.
네, 4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잘 하실거에요. 그래서 걱정일랑 접어두고 다시 제 갈길 가렵니다. 그래도 잠시 생각한 흔적은 남기고파서 이렇게 수신자 없는 편지 한 통 부칩니다. 앞으로는 이럴 일도 없을거에요. 그럼... 후련한 기분과 함께 글을 이만 줄입니다. 부디 잘 지내시고, 절 잊어주시길.
From. 평범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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