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유현준 -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도시에 익숙하며, 도시가 좋다. 특히 도시의 마천루와 크고 다양한 건축물을 보면 사진을 찍곤 한다. 하지만 거리가(혹은 건물이) 예쁘다고(혹은 지루하다고) 하면서도 그게 왜 그런지 자세히 몰랐다. 왜냐면 도시와 그 건축물에 대해 자세히 몰랐기 때문이다. 관련 책 중 읽어본 거라곤 지난번에 읽었던 '심미안 수업'의 건축 파트가 전부.
그런 와중에 중고서점 책장에서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분야의 책이었기에 한 번 시도해보고 싶었다. 특히 인문적 시선이란 문구가 날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책 평점도 좋은 편이고.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했다.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닮는다!
도시는 도시 계획을 한 디자이너의 손을 떠나는 순간 이내 진화를 시작한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반영되기 때문에 인간이 추구하는 것과 욕망이 드러난다. 하다못해 작은 사무실의 상사와 부하 직원의
자리배치에서도 사람들의 삶과 욕망을 읽을 수 있다. 상사는 부하 직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직원들이 그를 보려면 일부러 고개를
돌려서 봐야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작은 골목부터 뉴욕의 센트럴파크에 이르기까지, 도시
속에 담겨 있는 정치, 경제, 문화, 역사, 과학을 읽어 내고, 도시와 인간의 삶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공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들이 만든 도시에 인간의 삶은 어떤 영향을 받는지, 과연 더 행복해지는지 아니면 피폐해지고 있는지를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종횡무진하며 도시의 답변을 들려준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첫 몇 페이지를 읽을 때만 해도 묵직한 문단 덩어리 때문에 읽다 지칠까 걱정했으나 그건 내 기우였다. 중간중간 텍스트에 걸맞은 사진과 삽화가 있어 책장에 꾸준히 시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콘텐츠 자체가 매우 신선하고 흥미로워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일단 새로운 분야를 알아가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책에 나온 이야기가 하나하나 재밌었다. 특히 지금까지 막연히 '왜?'라는 의문만 가지고 있던 것들-예를 들어 동양에 목조건물이, 서양에 석조건물이 많은 이유나 호텔과 모텔의 차이 같은 것들-에 대해 답을 얻었다. 원체 어떤 사건(혹은 사물)의 뒷배경을 알아가는 걸 재밌어하다 보니 그런 이야기들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게다가 '인문적 시선'이라는 문구에 매우 충실한 책이었다. 지금까지 읽은 책들[각주:1]에서 봤던 다방면의 지식들이 여기에 한데 모여있었다. 마치 저자가 인문학 책을 정리한 것처럼.[각주:2] 괜히 건축에 온갖 학문이 종합되었다고 최재천 교수가 말한 게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건 역시 역사. 짧은 시간 동안 뜻밖의 역사 강의를 들었다. 프랑스 파리의 도시 구조가 조성된 배경, 할렘가가 '할렘'이 된 이유, 명동과 테헤란로의 조성 배경 등등.. 건축과 역사는 정말 떼려야 뗄 수 없구나.
책을 읽고 나니 서울이 다시 보였다. 평소에 서울에서 한강을 제일 좋아하고, 강남보다 강북을 좋아하며 DDP는 별로라 생각했는데 이 책이 내 마음을 명확히 정리했다. 그리고 우리 동네가 다시 보였다. 현재 거주 중인 건물 주변에 작은 놀이터가 2개 있는데, 하나는 항상 사람들로 넘쳐나고, 다른 하나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겠다. 덕분에 도시, 건축에 대한 시야가 넓어졌다. 조금 더 넓히기 위해 저자의 다른 책인 '어디서 살 것인가'도 읽어봐야겠다.
혹 이 책에 현혹되어 지금 있는 건축물들을 무조건 폄하하며 갈아엎어야 한다는 생각은 삼가자. 건축은 시간이 지나봐야 안다. 당장
나부터 90년대~20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아파트 보면 일종의 향수가 느껴졌으며 아파트 사이에 있는 주차장과 놀이터에서 상황에
맞게 놀았던 추억이 있다. 그러니 일단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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