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콜린 더브런 - 시베리아 (Siberia)
최근 무비자로 러시아 관광이 가능해지면서, 우리나라와 가까운 시베리아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여행의 로망 중 하나일 정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늦게 개방되었고 심지어 일부 지방은 아직도 접근이 어렵다보니 이 곳을 깊게 파고든 사람을 찾기 어렵다. 그렇기에 콜린 더브런의 고품격 시베리아 여행기가 더욱 반가울 따름이다.
“최고의 여행기다. 명쾌하고 서정적이며 박식하고 거의 고통을 느낄 정도로 감성적이다.”
《실크로드》의 저자이자 금세기 최고의 여행기 작가로 알려진 콜린 더브런의 시베리아 여행기. “시베리아”라는 단어가 주는 황량함과 광활함과 극한의 추위에 더해서, 밖에서 볼 때는 알 수 없는 시베리아의 다양한 현장들을 포착했다. 그의 묘사를 따라서 책을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독자들은 곧장 빙원으로 달려가고픈 충동을 느낄 것이다. 또한 시베리아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은 이제껏 우리가 만난 시베리아 여행기와는 확연히 다른 시베리아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와 그들의 생각을 통해서 시베리아의 과거, 현재, 미래를 가늠한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가 시베리아에 다녀온 건 90년대 후반. 시베리아가 외국인에 공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소비에트가 무너진 후 옐친 정권 속에서 끊임없이 혼란스러웠다. 그는 시베리아가 개방되자마자 재빨리 시베리아 구석구석을 깊이 파헤쳤다. 특히 보통의 여행자라면 쳐다보지도 않을 폐광산, 굴라그[각주:1] 주변, 툰드라 극지방 등을 골라서 갔다. 그것도 혼자서.
그렇게 눈으로 본 풍경, 직접 겪은 일을 정말 생생히 묘사한다. 마치 내가 툰드라 지대나 타이가 숲 속을 헤매고, 바이칼 호수의 깊고 푸른 물을 쳐다보고, 알타이 공화국의 초원을 둘러보고, 마가단의 굴라그 근처 눈밭을 파헤치고, 그 속에서 얼어붙을 것만 같다. 이르쿠츠크와 야쿠츠크, 예카테린부르크, 키질, 하바로프스크 등 여러 도시의 차이나는 분위기도 와닿았다.
저자의 여행 루트.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현지인들과의 대화. 라스푸틴을 따라하는 주정뱅이, 굴라그에 억울하게 갇힌 할머니,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는 청년들, 러시아제국 혹은 소비에트가 여전히 그리운 사람, 샤먼, 성호의 손가락에 모든 인생을 건 아저씨, 허황된 연구 결과를 믿고있는 연구자, 꿈도 희망도 없이 술만 마시는 노인 등등.. 그들은 각자 삶의 여정과 당신의 생각을 얘기하는데 마치 단단히 꼬인 실타래를 보는 것만 같다. 제국, 볼셰비키, 세계대전, 냉전, 붕괴 등의 굵직한 일들이 불과 80년 사이에 몰아쳤으니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대화와 풍경, 경험 묘사가 글로 모이니 당시 러시아인들의 패배감, 무력감과 체제 변화로 인한 혼란스러운 사회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미화나 비하 없이 그대로 담았다. 아마 저자가 러시아어를 어느정도 할 줄 아는데다 러시아 여행이 처음이 아니니[각주:2] 더 많은 게 눈에 들어왔다. 그만큼 대화의 깊이도 달랐고. 게다가 앞으로 다신 안보겠다는 마인드로 악착같이 파고들었다.
이 책이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건, 사진 한 장 없음에도 생동감이 넘친다는 점이다. 사실 처음엔 텍스트가 빽빽하게 들어차있다 보니 책이 잘 안 읽혔다. 설상가상으로 사뭇 음울하기도 하고.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던 걸지도 모르겠다.[각주:3]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 허망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어느새 나도 시베리아를 여행하고 있었다. 독자의 여행욕을 대리만족 시켜주면서 시베리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다. 혹 여행이 아니더라도 시베리아란 곳이 궁금하다면 이 책이 제격이다. 당시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아냈기에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 생긴 한 가지 질문. 현재의 시베리아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가 시베리아를 여행한 지 어느새 20년 정도 지났고, 그 사이에 나라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각주:4] 저자가 만약 현재의 러시아를 돌아다녔다면 어떻게 담아냈을지 궁금하다.
사실, 이제부턴..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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