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당했습니다.
지난 화요일 오전 10시경,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를 받으니 서울 중앙지검 사무관이라며 제 명의로 대포통장이 만들어졌으며 제가 피의자로 지목되어 고소당한 상황이고 제 재산은 모두 행정재산으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조금 뒤 검사에게 전화가 오더니, 앞의 말을 반복 설명하면서 이렇게 피해자가 피의자로 된 분이 많으며, 당신도 피해자로 보이니 자기들이 금융감독원과 함께 제 재산이 합법적인 재산임을 증명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다 웃긴 개소리들이지만, 당시 전 이미 완전히 속아버렸습니다. 전화하는 중간에 검사님 이름을 검색해보니 정말 서울에 계신 분이더라구요.[각주:1] 그 검사란 사람에게 제 계좌마다의 금액과 계좌가 있는 곳을 다 알려줬더니 제 주택청약 계좌를 먼저 해지하라고 하더군요. 일단 행정자산이고 나중에 입증이 끝나면 다 복구시켜줄테니... 그리고 중간에 이 내용을 발설하면 모든 재산을 동결처리할 것이니 발설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비밀 수사라며.. 그렇게 은행에 가서 주택청약 계좌를 해지했습니다.
그렇게 해지한 후 영수증을 보여줬더니, 본격적으로 사건공문장과 협조공문장을 제게 보내며 지금 해지한 내역과 현찰을 금융감독원에 제출하여 증명해야 하니 금융감독원에 제출하라 하였습니다. 근데 당신은 현재 이 자료를 대구에 제출해야 하는데 지금 바로 가는 것은 어려우니 업무 차 파견나와있는 직원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 사람이 지금 안산에 있다고.. 그래서 택시를 타고 지금 안산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사건 공문장(허위)
이동하는 중에는 위치 추적을 해야하니 전화를 켠 채로 데이터 인터넷을 끄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택시 내릴 땐 영수증 찍어서 보내주고.. 알겠다고 하고, 택시를 타고 안산으로 이동하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데이터를 다시 켜고 검사에 대한 기사를 좀
더 찾아봤습니다. 대략적인 이력을 확인했고, 안산으로 이동하려는데 그 사람이 잡담을 하길래 은연중에 서울에 오신 지 얼마 됐냐고
물어보니 서울로 온 지 몇년 됐다고 하더라구요. 1년도 안된 분이었는데...? 그리고 그 전에 있었다는 지사 정보가 다른데...? 그 전까지 계속 미심쩍었던 게 좀 더 미심쩍어졌습니다. 법원이 이동전화로 전화한 것도 이상하고, 관등성명 없이 공문만 달랑 보낸 것도 이상하고, 메일 주소도 이상하고..
그래서 보이스피싱으로 네이버에서 검색했습니다. 네이버에 제가 받았던 이 서류가 그대로 나왔습니다. 아놔 XX 젠장할, 나 속았구나..!! 미치겠네!!
그 때부터 마이크를 묵음으로 돌린 다음, 택시기사에게 지금 당장 근처에 있는 경찰서로 가달라고 했습니다. 마침 멀지 않은 거리에 경찰서가 있었고, 경찰서에 들어가자마자 지금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정문 안내원이 바로 지능범죄수사팀으로 데려가더라구요. 거기에 계시는 분들께 지금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고 있다고 말하니, 바로 경찰관 분들이 같이 가자고 했고, 경찰 분들과 함께 안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안산으로 가는 길에 경찰 분들께 지금까지 있었던 상황을 말씀드렸습니다. 사기꾼이 지금 오고있냐고 중간중간 물어봤는데, 도로가 공사중이라 계속 막힌다고 둘러댔습니다.
협조공문장(허위)
결국 범인은 놓치고, 경찰께서 집 근처까지 직접 데려다 주셨습니다. 감사하다 말씀드린 후, 아까 그 은행에 가서 사기 피해 사실을 알리며 계좌를 복구할 수 있냐고 말씀드렸는데, 일반 적금계좌는 복구가 가능하지만 주택청약 계좌라 어렵다며 거절하셨습니다. 그런 게 어딨냐는 눈빛으로 계속 쳐다보자, 그 은행원께서 본사에 전화하셔서 절차를 확인했습니다. 사실관계확인원과 수사결과 보고서가 필요하다는 답변을 얻고 담당 경찰분께 그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그러니 경찰 분께서 전화를 거셨더라구요. 일단 은행원 분과 직접 통화할 수 있도록 전달드렸는데, 수사결과보고서는 외부에 전달할 수 없는 서류라 제공이 어렵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자 은행원께서 다시 본사에 전화하셔서 확인한 다음, 제게 수사결과보고서에 준하는 서류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일단 알겠다고 답하고, 계좌를 복구할 수 있을 때까지 주택청약통장을 해지하며 받은 금액 전액을 임시적으로 보관하기 위해 통장을 만들어 보관하였습니다. 그러고 집 근처 식당에서 첫 끼를 먹는데, 도저히 밥이 안 넘어가더라구요. 중간에 경찰에게 전화가 왔는데, 일단 해지할 때 작성했던 서류를 받은 다음 경찰에 사실관게확인원을 작성하러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서류는 조금 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그렇게 오늘 낮에 서류를 받은 후 경찰에 다녀왔습니다. 그 날 있었던 일을 진술했고, 사건사고사실확인원을 받아왔습니다. 일단 전화번호에 대해 추적한 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며, 약 1달 정도 후에 그 결과가 우편물로 올 거라 하네요. 그 때까지 일단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 우편에 따라 필요할 시 정보공개청구 후 주택청약을 복원해달라고 요청할 예정입니다.
그저께 저녁부터 어젯밤까지 충격에 아무것도 안한 채 누워만 있었습니다. 제 불찰로 인해 십수년 간 모은 주택청약이 깨졌어요. 그나마 청약금을 잃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긴 해요. 정말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돌아보면 제가 바보같이 속은 구석이 한두개가 아니라 더 부끄럽습니다. 법에 대해 아예 모르는 사람도 아닌데 이런 것도 간파하지 못했다는 는 게 정말 치욕스러워요.
그럼에도 굳이 이 글을 쓰는 건, 저를 반면교사삼아 더이상 속는 사람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부디 대비하시어 저처럼 불필요한 화 입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 Normal One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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