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역을 누르면 첫 페이지로 이동
Echte Liebe 블로그의 첫 페이지로 이동

Echte Liebe

페이지 맨 위로 올라가기

Echte Liebe

돌아다니며 사진찍고, 책도 읽고, 그깟 공놀이에 일희일비한 기록을 글로 남기는 평범한 공간. (복붙식 댓글 혐오합니다. 진짜 욕할지도 몰라요.)

그냥 재미없고 흔해빠진 이야기.

  • 2016.02.02 19:13
  • Photo/Night
반응형

  어떤 평범한 일요일, 한창 시험 준비를 위해 학원 - 독서실 - 집을 반복하던 날이었다. 마침 아버지께서도 서울로 파견오셔서 같이 살던 때였다. 그 날도 여느 주말과 마찬가지로 늦잠 자고 일어나 천천히 아버지와 함께 아점 한 끼 하러갔다. 평소와 같이 밥먹고 다시 방에 돌아왔는데, 대뜸 아버지께서 한 마디 하셨다.


- 니 내한테 뭐 숨기는 거 없나?

- 없는데요?

- 맞나.. 

- 네.. 왜요?

-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시며) 아침에 내가 이걸 주섰거든..


'...... ㅅㅂ'


  그건 내 담배였다. 당시 난 흡연자였다. 대학생이 된 이래로 쭈욱 떨어져 살았으니 내가 조금만 노력해도 티가 나진 않았다. 그때까지 실제로 안 들켰고.. 물론 아버지께서 흡연자셨던 덕에 우리 가족이 모두 담배냄새에 상대적으로 둔감했던 영향도 있었지만. 아버지와 같이 살 땐 담배는 항상 독서실에 두고 다녔는데, 파견 끝날 때 되자 아들래미 공부하는 자리나 한 번 보자는 심산에 내 자리에 갔던 것. 난 설마 아버지께서 내 자리까지 찾아오실 줄 몰랐던 거지.


- 오늘 꿈을 꿨는데, 꿈에서 아버지가 아들 공부하는 자리에는 가봐야되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가봤더니만 이게 나오네?

- .....


- 니 저번에 몇 차례 물어봤을 때 안핀다 그러디만, 왜 애비를 속이노?

- .....

- (뭐라뭐라...) 앞으로는 애비 속여묵지 마라이.

- 네


- 언제부터 폈노?

- 5년 정도 됐네요.

- 이거 우짤꼬 하다가 그냥 말로 하는기다. 나중에 직장다닐 땐 몰라도 공부할 땐 담배 몸에 안좋다. 끊어라 알겠나.

- 네

- 할 말 다했으니 니 볼일 봐라.

- 미용실 좀 갔다올게요~

- 그래.


  머리 다듬고 집에 오면서, 평소 피던 마일드세븐 1미리짜리가 아닌 마일드세븐 라이트(6미리 짜리)를 사서 그 자리에서 3연속 줄담배를 때웠다. 알고도 그냥 조용히 말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과 이 나이 먹도록 이런 거 하나하나 터치받아야 하냐는 생각 등등을 하며 그저 필터만 빨아제꼈다.


  그러다 마지막엔 담배를 진짜 끊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다음주면 아버지께서 다시 돌아가시고, 그 다음부턴 혼자서 살게 된다. 앞으로 예전보다 조금 더 조심하고, 집에 내려가지 않는 이상 담배를 계속 펴도 괜찮았다. 한 번 걸렸으니 앞으로 좀 귀찮아지긴 하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못할 건 없으니. 그런데 그러기 싫었다. 이 나이먹고 이런 것까지 간섭받는 것도 엿같은데 지금처럼 또 숨어가며 피려니 구차하고 처량하며 지랄같았기 때문. 그래서 이 참에 담배랑 작별하자 마음먹었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한 대 더 핀 다음 그 담배는 버리고, 그날 밤에 독서실에서 안면 튼 친구한테 담배를 얻어 피고선 담뱃불을 껐다.



  그렇게 금연을 시작한 후 6일 쯤 되었을 때였다. 지난 며칠 간 모든 것이 산산조각나서 아무것도 못하다가 그나마 조금 나아졌을 때였다. 방에 잠깐 들렀다 다시 독서실에 가는 길이었는데, 길바닥에 생생한 담배 한개피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분명 '이젠 저 놈한테 더이상 안 흔들리지!'라 생각하며 걸어가고 있었는데 정신차리니 어느새 그 담배를 주워서 입에 물고 있었다 -_-... 며칠만에 진짜 담배를 빨아들인 것. 근데 이상하게도 담배에서 아무 맛이 안 났다. 보통 며칠 담배를 안 피다 다시 피면 아무리 적은 양의 니코틴이라도 어지럽기 마련인데, 그날은 정말 아무런 느낌도 안 들더라. '이거 뭐지???'라 생각하며 다시 가던 길 갔다. 이젠 이런 실수 다신 안한다며...

























  다행히도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진 않았다. 그리고 그 담배가 진짜 내 마지막 담배가 되었고. 5년 반 가까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 담배가 왜 아무 맛이 안 났는지 궁금하다. 신기하단 말이지..




이젠 금연기간이 흡연기간보다 더 길다. 사진은 금연기간과 흡연기간이 같아진 날 찍은 기념사진. 꼴에 기념이라며 집 근처 담배가판대를 담아봤다.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 (새창열림)

'Photo > Nigh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낮과 밤.  (6) 2016.02.04
삶의 지혜를 주소서.  (12) 2016.02.04
축덕의 자세.  (2) 2016.01.31
<160127> 서울, 야경사진 모음(2)  (2) 2016.01.28
서울, 야경사진 모음.  (12) 2016.01.19

댓글

이 글 공유하기

  • 구독하기

    구독하기

  • 카카오톡

    카카오톡

  • 라인

    라인

  • 트위터

    트위터

  • Facebook

    Facebook

  •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

  • 밴드

    밴드

  • 네이버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 Pocket

    Pocket

  • Evernote

    Evernote

다른 글

  • 낮과 밤.

    낮과 밤.

    2016.02.04
  • 삶의 지혜를 주소서.

    삶의 지혜를 주소서.

    2016.02.04
  • 축덕의 자세.

    축덕의 자세.

    2016.01.31
  • <160127> 서울, 야경사진 모음(2)

    <160127> 서울, 야경사진 모음(2)

    2016.01.28
다른 글 더 둘러보기

정보

Echte Liebe 블로그의 첫 페이지로 이동

Echte Liebe

  • Echte Liebe의 첫 페이지로 이동

공지사항

  • 공지 - 다시 쓰는 공지글 - 190705 + 240730 // 짤막한 공지 첫번⋯
  • 공지 - https://ohnues.tistory.com
  • 공지 - 질문 받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카테고리

  • Echte Liebe (2006)
    • Domestic (206)
      • 200 (34)
      • 300 (7)
      • 400 (7)
      • 500 (46)
      • 600 (27)
      • 690 (41)
      • 700 (15)
      • Signpost (11)
      • Timetable (18)
    • Overseas (60)
      • 2017 - O'zbekiston - Fin. (33)
      • 2018 - Deutscheland (via 北京.. (26)
    • Photo (425)
      • 100 (53)
      • 700 (10)
      • Day (145)
      • Night (74)
      • Film (127)
      • Video (15)
    • Sports (207)
      • Baseball (53)
      • Football (126)
      • Photograph (22)
      • Etc.. (2)
    • Works (594)
      • Music (498)
      • Book (71)
      • Et cetera (25)
    • Activity (48)
      • Riding (27)
      • Swimming (3)
      • Tennis (15)
      • Running (0)
      • Etc.. (1)
    • IT (266)
      • Hardware (20)
      • Software (45)
      • Blog (183)
      • Mine (18)
    • Stubs (199)

최근 글

정보

Normal One의 Echte Liebe

Echte Liebe

Normal One

검색

블로그 구독하기

  • 구독하기
  • 네이버 이웃 맺기
  • RSS 피드

티스토리

  • 티스토리 홈
  • 이 블로그 관리하기
  • 글쓰기
Powered by Tistory / Kakao. Copyright © Normal One.

티스토리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