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물안궁 자문자답 - 사진 편. (上)
(편의상 존칭 생략하니 양해 바랍니다.)
* 오랜만입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 정말 오랜만입니다! 최근 몇 달간은 정말 눈코뜰 새 없이 바빠서 노트북을 켤 시간이 마땅찮았어요.
* 많이 힘드시겠어요..
- 네... 정말 DG겠습니다 껄껄.
* 에구,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셨네요... 이참에 좋아하는 사진 이야기 하시며 기분전환 하시죠!
- 좋습니다!
* 언제부터 찍었어요?
- 찍는 것 자체야 어릴 때에도 했죠. 부모님께서 똑딱이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계셨고, 시간이 좀 지난 후엔 폰도 있었고...
* 아, 그럼 어릴 때부터 사진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 아니요. 동생 말로는 어릴 때 사진기만 들이대면 도망가기 바빴대요.
* 의외네요..
- 생각보다 그런 사람 많을겁니다. 찍는 거랑 찍히는 건 엄연히 다르니까요.
* 왜 그렇게까지 거부했을까요?
- 이미 십수년이 지난 옛날인지라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일단 억지로 사진에 찍히기 싫었을거에요. 내가 굳이 안 나와도 되는데 억지로 사진에 들어가 천편일률적으로 석탑이나 건물 앞에서 망부석이 되기 싫었습니다.
* 그게 전부인가요?
- 당연히 아니죠. 제 눈엔 사진 속의 깡마른 제 모습도 보고싶지 않았습니다..
* 하하...
- 중학생이 되면서부턴 앨범에 제 얼굴이 나온 사진 찾기 힘들어요. 자연히 사진 찍히는 게 더 어색해졌죠.
* 그런데 카메라를 직접 사셨네요?
- 군에서 근무 서면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들 쭉 뽑아봤는데, 그 중 하나가 카메라였어요. 그 때만 해도 DSLR을 하나 들이고팠죠.
* 특별히 봐둔 기종이 있었나요?
- Nikon D40이요.
* 그 때부터 벌써 니콘을 찾으셨네요?
- 아아 ㅋㅋㅋ 근데 그 땐... 특별한 이유는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저... 옆에 있던 후임이 이거 산다길래 저도 이게 좋은 줄 알았어요. 괜히 캐논보단 니콘이 더 땡기기도 했고...
* 그래서, 원하던 대로 사셨나요?
- 아니요,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카메라를 샀어요. 캐논 파워샷 A580이라고... 똑딱이 카메라 하나 샀어요.
* 어쩌다가...
- 아니 글쎄... 집에서 공부할 놈이 카메라는 웬 말이냐며 자기가 아는 사람한테 가서 하나 사라더라구요? 거기서 그냥 대충 눈에 들어온 거 하나 샀어요.
* ...그러면 직접 사신 게 아니지 않나요?
- 뭐 그쵸, 한 순간에 제가 찾아봤던 게 시간낭비가 됐죠.
* 많이 아쉬우셨겠어요.
-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화나요. 이것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겹쳐서... 제가 생각한 대로 된 게 거의 없이 학교에 복학했었어요. 정말 빡치고 답답해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어요. 그러다보니 학교 성적이건 동아리 생활이건... 아무것도 제대로 된 게 없었어요.
* 쌓인 게 많으시네요.
- 네,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매일 밤 게임(특히 FM)하며 날밤 새며 담배만 뻑뻑 피워대고... 지금 생각해도 그런 식으로 복학하면 안됐어요. 시간을 완전히 허비했죠.
.... 여기까지만 할게요. 에휴...
* 네, 잘 생각했어요. 본론으로 돌아가요. 아무튼 그 카메라... 잘 썼잖아요.ㅎㅎ
- 네네 ㅋㅋ 아마 처음부터 DSLR이었으면 얼마 못가 카메라에 흥미 잃고 서랍 한 구석에 방치됐을 거에요.
* 너무 단정적인 거 아닌가요?
- 전혀요. 여전히 사진에 대해선 딱히 관심이 없었거든요. 처음에 2~3달 정도만 꼬박꼬박 들고 다녔지, 그 후부턴 가끔 멀리 갈 때만 한두번 챙겼어요. 실제로 카메라 산 후 첫 3년간 찍은 사진이.. 내일로여행 때 찍은 거 빼면 800장 정도밖에 안돼요.
* 음...
... 많이 찍은 거 아니냐구요? 네, 아닙니다. 한창 DSLR로 많이 찍을 땐 말이죠, 막셔터나 연사 거의 안하는데도 1달 사이에도 500장 정도는 찍었어요. DSLR만!!
* 허허, 그럴거면 카메라를 살 이유가 없잖아요.
- 그쵸? 사실 그 땐... 일종의 '군 생활에 대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어요. 그냥 카메라 그 자체가요. 그러니.. 내가 내 선물 산다는데 "방해를 받아서" 짜증났던 거였어요. 물론 성능 차이야 확실했고 기기 스펙이 떨어져서 짜증이야 났지만, 그거때메 내가 무슨 사진을 못 찍어서 화나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당장 조리개값이니 iso니 하는 것도 몇 년이 지나고 알았는데...
* 하긴, 지금 문답만 봐도..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 뿐이네요.
- 네, 결과론적으로는 똑딱이로 사길 잘했죠. 그래서.. 주변에서 카메라를 처음 사려는 분들한테 웬만하면 가볍고 저렴한 똑딱이 하나 사서 일단 찍어보라고 말해요. 기본적인 기능도 소화 못하는데 굳이 무거운 바디 들고다녀봐야 재미는 커녕 어깨만 아프거든요.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DSLR을 들이시긴 했네요..
- 네! 2015년 여름에 중고로 샀어요. 짧게나마 인턴생활 하며 조금식 쟁여놓은 돈으로 샀습니다. 이번엔 외부적인 방해 없이 100% 제 뜻대로 결정하고 샀기에 그 기쁨이 배가됐어요. 일종의 한풀이를 한 셈이 됐죠.
* 흠... 그것도 일종의 보상 같은데요?
- 네, 그렇긴 하죠.ㅋㅋ 하지만, 단언컨대, 이 땐 정말 '사진' 때문에 'DSLR'이 '필요'했습니다. 거의 1년이 넘는 시간동안 DSLR을 사기만을 기다렸어요.
* 1년이라.. 그렇게 딱 무 자르듯이...?
- 아, 그건 아니에요. 그 전에도 관심은 있었어요. 다만 DSLR을 '바랄' 정도까진 아니었던거지..
* 아까 위에선 사진에 관심없었다더니...
- 그 사이에 성향이 바뀐거죠.
* 성향?
- 네, 제가 그 사이에 완전히 '밖돌이'가 됐죠.
* 하긴, '노말원 = 역마살'이죠.
- 일단 2009년에 처음으로 혼자서 여행을 갔는데 그 기억이 정말 평생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어요. '알'을 깨고 나온 느낌이랄까. 그 후에 시험을 준비하느라 한 곳에만 박혀있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답답하더라구요.
그러다 2012년에 시험을 포기하고 자유의 몸(?)이 되면서 틈만 나면 나갔어요. 1박 2일이라도 여행을 떠났죠. 그렇게 야금야금 나가다 보니 완전히 역마살 낀 '밖돌이'가 되어있더라구요.ㅎㅎ
* ㅎㅎㅎ 사진도 열심히 찍었겠네요.
- 맞습니다. 그 아름다운 풍경들을 그냥 눈으로만 보고 지나칠 순 없잖아요? 나중에 기억도 잘 안나고... 그래서, 절경을 마주할때마다 그 흔적을 남기고 싶었어요.
* 여행 기록이군요.
- 네, 여행에 사진이 빠지면 안되죠.ㅎㅎ
* 근데, 여전히 어디 갈 때만 들고가신 것 같은데...
- 똑딱이만 보면 맞는 말이죠. 하지만 꼭 카메라가 있어야만 사진을 찍는 건 아니잖아요.
* 아, 스마트폰..
- 네, 2011년 봄에 스마트폰으로 넘어왔는데, 정말 신세계더라구요. 심지어 공짜로 풀린 넥서스원인데도요. 특히 카메라는 무슨... 피쳐폰이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어요. 게다가...
* 게다가?
- 얼마 지나지 않아.. '인스타그램'이란 걸 처음 시작했어요.
* 와, 거의 초창기네요..?
- 그쵸, 그 때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알던 앱이었어요. 한창 스마트폰에 빠져서 이것저것 깔아본 앱 중 하난데,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제 입맛대로 만지작거리니 재밌더라구요? 게다가 주변에서 제 사진들 보며 잘 찍었다고 칭찬도 해주고요. 하트 하나 받을 때마다 정말 뿌듯했어요. 그래서 더 욕심냈고, 반응이 오고, 공들이고...
* 어떻게 보면 선순환이네요.
- 네, 당연히 여행을 가면 갈수록 사진에 눈길이 가더라구요. 어떻게 하면 이 풍경을 잘 담을 수 있을까.. 이거 좀 자랑하고 싶은데...!!
* 근데, 그 정도면 똑딱이로도 충분할텐데.
- 그쵸, 위에 찍은 정도의 사진은 똑딱이랑 폰으로도 충분히 찍죠.
* 근데 DSLR까지 온 건, 호옥시 장비병...!?
- 1%도 없다고는 말 못합니다만, 저 때만 해도 똑딱이로 찍는 데 큰 불만은 없었어요. 모니터로는 이 정도로도 충분했고, 보정이 필요하면 인스타그램으로 하면 되니까요. 정말 DSLR을 '바라게 된' 계기는 정확히 따로 있어요.
* 호오... 그렇게 딱 말씀하시니 더 궁금해지네요. 어떤 계기였나요?
-2014년 3월에 포항에 스틸야드 홈경기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잠시 동궁과 월지(안압지)에 들렀어요. 그 전해에 처음 본 안압지 야경에 매료됐는데, 하필 그 때 카메라를 집에 두고 가는 실수를 저질러서 풍경을 제대로 못 담았거든요. 이번에 아쉬움을 해소(?)하려고 삼각대까지 챙겨서 한번 더 간 거죠.
근데 웬걸!? 작년보다 몇 배는 예뻤어요!! 그 때 관람하러 오신 분들 전부 하늘에서 눈을 못 뗐습니다. 근데 한편으론 짜증이 나더라구요. 이걸 이것밖에 못 담아?? 옆에선 DSLR로 그 풍경을 열심히 담고 계시는데, 그 분들이 처음으로 부러웠어요. 이건 진짜 DSLR로 담아야되는데... 그때부터 '이런 예쁜 풍경을 DSLR로 담아야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어요. 어떻게 보면... 혹 떼러 갔다가 '대왕 혹'을 붙여왔네요.
그리고 1년이 조금 지난 늦봄에 결국.. DSLR을 영입했습니다.
* 와, 이 풍경은 못참죠.. 근데 이야기가 또 길어지네요. 그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번에 이어서 하시죠.
- 네, 끊어가시죠. 근데 우리.. 음악 이야기도 아직 안 끝난 거 알죠?
* 아이고, 언제 다 하죠..?
- 하하, 맘 편히 먹고 천천히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