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vity/Tennis

그간의 지름 이야기. (30) - <250222> 윌슨 프로스태프 V13 (Wilson Pro Staff V13) + 짤막한 시말서 (+250309 내용추가)

Normal One 2025. 3. 9. 21:23
반응형

  누군가 내게 실물로 봤던 라켓 중에 가장 간지나고 예쁜 라켓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난 주저 없이 윌슨 프로스태프 V13이라 말하겠다.

재작년 10월, 첫 라켓 지름글 中.

 

  이 녀석의 실물을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프로스태프 V13만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라켓은 보지 못했다. 오죽했음 그 강렬한 인상 때문에 처음으로 지른 새 라켓도 noir 에디션이었을까. 그렇지만 저 글을 썼을 때 이미 V14가 출시된 후였던지라 매장에서 V13을 구할 순 없었고(저 여성용 제품마저도 딱 하나 남은 라켓이었다), 인연이 아니겠거니 하며 마음을 접었다. 

 

  그 후로 여러 라켓을 구입해서 썼다. 이래저래 만족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6개월에 한 번 꼴로 라켓을 바꾸며 블로그에 지름글도 올렸다. 그러다 작년 여름 RF01을 들였을 땐 만족도도 높았기에(비교글도 올렸다), 길고 긴 라켓 욕심에서 벗어나 RF01에 정착할 것으로 믿었다. 자연히 신제품에 대한 관심이 확 식었고, 내 스트로크와 서브, 발리에 대한 고민이 주된 관심사였다.

 

  지난 주말 아침까지만 해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약 반나절 후, 난 새 라켓을 손에 쥐고 쥐고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니 노말원씨, 이중인격자세요?라고 말할까 봐 그 히스토리 중 일부는 아래에 접어뒀다. 접은 글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토요일 낮에 테니스 게임을 하던 중 라켓 프레임에 금이 가서 새로 사야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는 이야기다. 

 

  반드시 필요한, 그리고 개인적으로 깊이 새겨야 할 히스토리지만.. 지름글이란 주제엔 썩 어울리지 않는 데다 글이 늘어지기까지 하여 넣어뒀다. 읽지 않아도 글 읽는 덴 문제없으니 바로 넘어가자.

 

더보기

  당연히 지난 주말 단식 게임을 치러 가기 전까지만 해도 경험치를 쌓고 내 스트로크를 좀 더 다듬을 생각으로 가득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어느새 스트링을 바꾼 지 2달이 넘었기에 슬슬 스트링을 교체할 때가 되었다는 걱정뿐이었다. 근데...

ㅅㅂ...

 

  그렇다. 라켓 프레임에 금이 갔다. 이게 불의의 사고였음 억울하기라도 하겠지만, 200% 내 잘못이었다. 공이 너무 안 맞은 데다 상대가 공 주는 스타일이 나랑 전혀 맞지 않았고, 거기에 나 스스로에 대한 짜증이 폭발하여 라켓을 땅에 내리쳤다. 그래도 TV에 나오는 선수들처럼 대놓고 부수듯이 후려친 건 아니어서 그냥 게임을 끝냈는데...

 

  게임을 말아먹고 물 한 모금 마시며 원망하듯 라켓을 보는데, 어...? 라켓에 금이 쫙. 그 순간, 자괴감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당장 남은 게임이야 함께 들고 온 블레이드 라켓이 있어 문제없었지만, 수치심이 남은 시간 동안 날 뒤덮었다. 아무리 추운 날에 라켓이 상하기 쉽다지만, 그렇게 세게 안 쳤다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 자체만으로 실드가 불가능했다.

 

  테니스를 치고 집에 가는 내내 나 자신에게 (속으로)온갖 육두문자와 맹비난, 폭언을 퍼부었다.

 

"노말원 🤬🤬🤬야, 니 그 🤬같은 🤬🤬🤬 때문에 35만 원을 허공에 뿌려? 라켓이 잘못했어? 이거 니가 테니스를 🤬🤬🤬같이 쳐놓곤 왜 라켓에 🤬🤬🤬이야? 🤬🤬🤬🤬야, 그렇게 니 스윙이 🤬같으면 🤬🤬🤬 떨 시간에 스윙 연습이나 더 하라고 🤬🤬아!" [각주:1]

 

  하지만 마냥 자책만 할 상황은 아니었다. 당장 다음 주부터 써야 할 라켓이 필요했다. 금전적으로 생각한다면 블레이드를 다시 써야겠지만, 이 라켓으로는 앞으로도 게임을 치를 자신이 없었고, 연말정산으로 받은 게 있어서(....) 이참에 다른 라켓을 하나 들이기로 했다.

 

  테니스를 끝낸 후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집으로 가는 약 1시간의 동안 고민했다. 지금 당장 구할 수 있는 건 RF01이었다. 게다가 평소에 딱히 그 라켓이 불만족스러웠던 건 아니어서 바로 가면 됐다. 하지만 윌슨 매장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헤드 스피드나 그래비티도 있지만, 라켓 특성도 잘 모르는데 무턱대고 넘어가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럼 뭘 사려고? 딱히 답은 보이지 않았다.

 

 

* 앞으로 다시는 지난 주말과 같은 실수를 반복치 않도록 블로그에 대놓고 치부를 드러냈다. 반성하자 정말. 어디 프로선수들처럼 라켓이 협찬으로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순간의 감정에 못 이겨 그런 멍청한 짓을 하니? 혹 협찬을 받는다 한들, 정말 테니스 실력을 늘리고 강력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싶다면 감정을 표출할 에너지를 스윙하는 데 쏟았으면 한다. 

 

 

  테니스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집으로 가는 내내 고민하던 중이었다. 언젠가 심심풀이로 당근을 보다 눈에 들어왔던 윌슨 프로스태프 V13이 생각났다. 그 글이나 한 번 보고 생각해 보자며 당근 앱에 들어갔고, 여전히 판매중이었다. 흠, 차라리 이걸 살까... 하는데 그 아래에... 프로스태프 V13 신품 판매글이 있었다!! 당근에서 프로스태프 V13 신품을 구할 수 있다니?!! 그것도 무려 미개봉 신품!?!?

 

  그 순간, 눈이 돌아갔다. 이건 완전 기회잖아!! 최고의 워너비가 눈 앞에 있는데! 아, 물론 안다, 이 라켓 어렵다는 걸. 그럼에도 가지고 싶었다. (순전히 개인 취향이지만)디자인만 봤을 때 지금까지 본 라켓 중 가장 내 스타일에 왠벽히 부합하기에 놓칠 수 없었다. 

 

  망설임 없이 메세지를 드렸다. 바로 답장이 왔고, 포장도 안 뜯은 새 제품이라 하였다. 언제 거래할 수 있을지, 아니 지금 바로 거래 가능한지 물어봤는데, 약 2시간 후에 거래가 가능하다고 하였고, 장소까지 이야기를 마쳤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당근 앱으로 약속을 만들었을 때 집 앞 골목에 도착했었으니.. 불과 30분 남짓한 시간에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갑자기 '아다리'가 이렇게 잘 맞다니?

 

  집에서 씻고 좀 쉬다 약속시간에 맞춰 거래 장소에 갔고, 물건을 확인한 후 거래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알고보니 해외에서 직구하는 과정에 주문 실수로 1개를 더 샀다더라. 해외 직구니 복잡하게 환불하고 그러는 것보다 간편히 당근으로 처분하려 했던 듯. 원래는 박스도 미개봉이었으나 물품 확인 때문에 박스를 연 게 차이라면 차이일까..

 

집에 가는 길. 스트링 작업을 하려 했으나 주말이라 일찍 닫은 걸 뒤늦게 알았다. 똥멍청이 노말원...

 

  그렇게 집에 다시 돌아왔다. 원래라면 그토록 원하던 물건을 손에 넣었으니 잔뜩 신났겠지만, 이번엔 그럴 상황은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나 자신에게 어이없어하며 언박싱 했고, 간단히 사진을 몇 장 남겼다.

 

꽁꽁 싸매여있었다.

 

그 분의 실루엣이 보인다.

 

크.. 페더러!

 

드디어 완전히 개봉!

 

 

정말 심플 그잡채. 정말 군더더기없이 예쁘다. 내 스타일이야.

 

 

 

 

캬... 사진만으로 클래스가 느껴짐(?)

 

라켓 스펙. 원래 쓰던 RF01보다 15g 무겁다. 그리고 헤드라이트.

 

3그립. 2그립이 보통이다. 아마 그립때문에 판매자 분이 처분하는 데 애먹지 않으셨을까...

 

버캡.

 

  그리고 다음날 오전, 평소 스트링작업을 자주 맡기는 테니스 용품점에 스트링 작업을 맡기러 갔다. 알루파워로 할까 하다 작년에 사서 하나 남아있던 다이아뎀 프로X 스트링으로 했다. 처음 작업하는 것이니만큼 기분도 낼 겸 스텐실 작업까지 했다. 여기에 오버그림은 덤.

 

테니스 샵에서 나오자마자 찍은 사진.

 

  스트링에 스텐실까지 하니 없던 윌슨뽕(...)도 생기는 듯 했다.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웠다. 라켓만 봐도 페더러의 우아함이 전해진달까? 물론 지난번에 질렀던 블레이드나 RF01도 하나같이 영롱했지만, 이번엔 신기루라 여겼던 존재가 현실이 되어 내 품에 안긴거라 그 감회가 특히 남달랐다. 마치 순수한 꿈을 이룬 것마냥... 

 

  여전히 마음 한켠엔 어제의 그 실수에 대한 잔상이 남아있지만 그걸 자양분으로 삼아 지금 라켓을 더 소중히 아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 마음을 담아 집에 도착하여, 스트링 작업이 끝난 라켓을 카메라에 담았다. 

 

 

캬,, 다시봐도 정말 잘 빠졌다.

 

 

정말 미친 디자인이다. 깔끔하면서도 심심하지 않아!

 

 

 

 

 

 

 

  모든 세팅을 끝내니 당장 코트에 나가고 싶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라켓이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한테 맞는지 아닌지를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혹시 안맞으면 빨리 당근으로 처분하는 게 맞을테니..). 때마침 지난 화요일에 볼일이 있어 오후 반차를 썼고, 때마침 그  볼일이 끝난 후의 어떤 시간에 랠리 파트너 모집글이 올라왔다. 그렇게 화요일 이른 저녁에 짧게나마 랠리를 치고 왔다.

 

첫 실전 투입 직전.

 

  디자인은 맘에 들지만 어렵기로 정평이 난 라켓이라 내심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칠 만했다. 기존에 쓰던 RF01보다 15g 무거웠는데 살짝 더 무거운 정도? 그 무게가 크게 체감될 정도는 아니었고, 덕분에 그 부분이 딱히 신경쓰이진 않았다. 되려 타이밍 안맞을 때 무게로 욱여넣기가 돼서 오히려 좋아?! 물론 한두번 정도 나온 프레임샷이야 100빵 98빵 라켓 쓸 때도 똑같았으니 뭐..

 

  무엇보다 정타가 됐을 때 시원하게 나가는 게 일품이었는데, 손맛이 좋다는 표현이 단번에 이해됐다. 게다가 잘 맞았을 때 멀리 날아가는 느낌이 아니라 더 좋았다. 나한텐 블레이드보다 RF가, RF보다 프로스태프가 더 좋은듯? 같이 친 분 말로는 공이 날카롭게 꽂힌다던데, 내가 봐도 정타일 때 탄도가 많이 낮아진 듯했다.

 

  그치먼 이제 겨우 한 번이고, 상대적으로 공이 느린 분이랑 쳤기에[각주:2] 판단은 나중에 할 것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썼던 라켓 중 첫 느낌이 가장 좋았다. 이제 다가오는 밤에 게임이 있고 남성분도 게시니 한번 더 체크하는 걸로(혹시 정말 아니다 싶음 팔아야하니까...). 두어번 더 치고서 본 글에 내용 추가하기로 하고, 오늘의 지름 포스팅은 이 쯤에서 마무리하겠다. 

 

 

+ 250309 추가.

 

  그 사이에 게임도 두 번 치뤘다. 혼복도 있었지만 거의 남복이 됐는데...

 

  낮게 깔려가는 라켓 특성을 온전히 느끼는 중. 블레이드 쓸 때 났던 어이없는 홈런볼은 아예 없다시피한데(혹 떠도 내가 잘못쳤다는 걸 바로 느끼니까), 예전 RF01이면 붕 떠서 어떻게든 넘어갔을 법한 공들이 네트에 걸리네. 내 백핸드에 힘이 안실린다는 걸 이 라켓 쓰고서 제대로 느끼는 중...

 

  그래도 정타 맞았을 때 날카롭게 꽂히는 그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서브 때릴 때 (폴트 여부를 떠나) 제대로 맞은 서브들은 같이 치는 사람들 모두 감탄하는 정도랄까...? 포핸드도 제대로 맞으면 쫙 갈려서 들어가고. 위에서 말한 공이 날카롭게 꽂힌다는 느낌이 뭔지 확실히 알겠음. 

 

  아무튼, 어렵다, 확실히 어렵다. 그래서 스트링 텐션을 낮춰야하나 고민중이다. 근데 극복 불가능한 어려움은 아닌 듯. 좀만 더 정타를 맞히고 면을 잘 때릴 수 있다면, 정말 홈런 칠 걱정없이 빵빵 때릴 수 있을듯!? 

  1. 원래 필터링 없이 그대로 쓰려다 그 모습조차도 썩 좋은 모습이 아니라 판단되어 필터링하였다. [본문으로]
  2. 여성분이었다. 여성분 치곤 파워풀했지만, 그래도 남자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느린 편...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