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이석원 - 보통의 존재 +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읽은 이야기.
1. 보통의 존재, 2014년 12월
이석원의 에세이를 처음 읽은 건 거의 5년 전 이맘때, 몸과 마음에 찬바람이 잔뜩 불던 시절이었다. 아마 처음엔 순전히 '이석원'이라는 이름만 보고 '이 분이 글도 썼네?'라고 생각하며 집어 들었을 테다. 지금이야 작가 이석원과 언니네 이발관 이석원(이하 저자)을 철저히 분리했다는 걸 알지만(이젠 더 이상 뮤지션이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저자에 대해 자세히 모를 때여서... 1
5년 전의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가장 먼저 기억나는 건 그 책에 '빨려 들어간' 것. 당시에 책을 편 자리에서 한 번에 쭉 읽었다. 거추장스러운 미사여구가 없이 글이 슥슥 읽혔다. 다분히 냉소적이지만 솔직 담백했다. 글에서 본인이 책을 사놓기만 하고 잘 안 읽는다고 하셨는데, 정녕 안 읽으신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역시 많이 읽는 게 전부는 아니구나. 세부 내용까지 하나하나 기억나진 않아서 구체적인 부분을 말하긴 어렵지만, 때론 허를 찔려 간담이 서늘했고, 때론 글 덕분에 내 생각이 정리(정립) 된 걸로 기억한다.
당시의 내가 책을 주로 따라가는 편이긴 했지만, 한창 힘들었던 시기라 그런지 그의 생각을 단순히 따라가는 수준 이상으로 많이 공감했다. 그러면서, 만약 글을 쓴다면 저자처럼 담백하게, 읽는 사람이 슥슥 읽히게끔 써야겠다고 다짐했었다... 2
당시 사진으로 남겨둔 책 일부분.
그 후 5년이 지났다.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 앨범이 나오고 후속 에세이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도 읽고 블로그에서 언니네 이발관에 대한 흔적을 여기저기 발견할 때마다 반가워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잠깐이었고, '보통의 존재'에 대한 기억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특유의 느낌만 남긴 채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2.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2019년 12월
5년 만에 저자를 다시 찾았다.
최근에 계속 묵직한 책만 읽다 보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가 당겼다. 무엇을 봐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요즘 한창 '언니네 이발관'에 꽂혀 인터넷(특히 알라딘)을 뒤적이고 있었다. 자연스레 저자의 근황(?)을 뒤늦게나마 갱신했고, 자연스레 이 책의 존재를 뒤늦게나마 확인했다. 마침 잘 됐다.. 3
5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책에 따라가는 편이었던 그때와 달리 태클을 걸기 시작했기에 중간에 막히는 부분이 생기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러지 않고 끝까지 쭉 읽었다. 문체는 그때 그대로였다. 한결같이 간결하고 솔직 담백하며 읽기 쉬웠다.
대신 글에 담긴 내용의 분위기는 살짝 달랐다. '보통의 존재'에 비해선 살짝 따뜻했다. 정확히 쓰자면 사람 냄새가 났다. 저자를 실제로 뵌 게 아니니 잘 모르지만, 10년이란 세월을 거치며 살짝 난(暖)색이 섞인 듯했다. 그의 나이 38과 47의 차이이려나? 4
개별 내용에 대해 말하자면..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초반부의 언니네 이발관 해체 이야기. 음악을 하는 게 고통스러운 작업이고 압박감을 많이 느꼈다는 건 평소 알려진 그의 작업 스타일 상 그럴 수 있을 듯했다. 내가 진짜 놀란 건 책에서 음악 이야기를 했다는 그 자체. '보통의 존재'에선 음악 이야기를 조금도 다루지 않았는데. 이젠 과거니까 그때와는 입장이 다르긴 하겠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줄이야...
그리고 저자와 부모님 간의 에피소드들을 읽고 있자니 저자가 내게 은연중에 조언을 건네주고 있는 듯했다. 저자는 그저 에피소드들을 보여준 것뿐이었지만 받아들이는 나는 그게 입체적으로 보였다. 필자 역시 (세부적인 관계도는 제법 다르지만)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해 저자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생각하)기에.. 꽤 괜찮은 미리보기였다.
마지막으로, 하기 싫은 걸 안 하기 위해 열심히 산다 했는데, 역설적이게도 이 부분에서 저자가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그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정말 치열하게 사셨네요. 강단도 있으시고요. 무엇보다, 그 자체로 능력자이셔요. 경외롭네요..."
그 외에 눈에 들어온 문구 몇 개를 폰 카메라에 담아봤다.
튜닝의 끝은 순정.
우열을 가릴 수 없네요. 둘 다요.
위의 2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아래에 접어두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보통의 존재'가 생각났다. 저자의 첫 책이며 필자가 나이 든 후(?) 처음으로 읽은 에세이였기에 어쩔 수 없이 생각났다. 책장이 끝에 다다르면서 '보통의 존재'를 다시 읽고픈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3. 보통의 존재, 2019년 12월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이하 최신작)을 완독한 다음날, 도서관에서 '보통의 존재'를 빌렸다. 무엇보다 책 자체로도, 당시의 내 개인 상황으로도 여러모로 인상적인 책이었기에 짤막하게나마 그 감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냥 기억을 더듬어 몇 마디 끄적일 수도 있었지만, 이왕 최신작도 읽었겠다, 한꺼번에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최신작을 읽으며 이 책을 쓸 당시의 상태를 알고서 보니... 정말 처절한 마음으로 쓴 글이구나 했다. 글쓰기에 뒤늦게 즐거움을 느낀 걸로 확인했는데, 그간 가슴에 남은 응어리들을 깎고 또 깎은 듯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을 하나씩 떼어놓으면 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내용 아닐까(물론 기본 성향이 다르다면 전혀 아닐 수도...). 사람의 단면이지 뭐(물론 그걸 한데 모아두니 영락없는 깊은 다크(?)였지만).
개인적으로 부질없고 허무맹랑한 희망을 주는 것보단 저자처럼 솔직한 게 낫다고 생각하기에 여전히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비록 냉소적이긴 해도 사람 냄새가 물씬 나고 '적당히' 솔직하기에 저자의 책을 꾸준히 찾는 게 아닐까 싶다. 나도 그중 하나고. 물론 나는 날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믿거나~말거나~
책을 다시 읽다 보니 당시 한창 고민했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당시 내 상태 역시 (저자만큼 처참하진 않았지만) 좋지 않았기에 이 책이 더욱 눈에 들어왔겠지. 언제나 어려운 인간관계, 마냥 편하지 않은 가족 간 관계 등등.. 그래도 가족관계에 있어선 5년이란 시간 동안 나름의 원칙을 정립한 것 같아 다행이다.
이번에 읽으며 눈에 들어왔던 문구들을 폰에 담았다. 유독 이 책은 사진을 많이 찍게 되네.. 1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아래에 접어두었다.
지금에서야 크게 와닿았다. 그만큼 나이를 먹은거겠지.
마지막으로, (저자는 싫어하겠지만) 글을 읽는 내내 '가장 보통의 존재' 앨범 멜로디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뭔가 서로가 서로를 설명하고 있었다. 아무리 노래와 글이 별개의 영역이라지만 결국 같은 사람에게서 출발한 것이니 당연하겠지. 하지만 정작 이 책을 다 읽으니 생각나는 노래는 '홀로 있는 사람들'. 앞으로 나올 신작도 계속 읽을 건데도 하필 왜 이 노래일까. 나 스스로 두 책을 보고 무언가를 마무리하고 싶나 보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노래를 들으며 감상문을 이만 줄이고자 한다.